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지만 건설 경기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이 ‘0% 대’로 떨어진 데에는 건설업 부진이 큰 몫을 차지한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건설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2.2% 줄어들며,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 4분기(-17.7%)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하반기 전망도 밝지 않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체 설비투자가 소폭 반등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건설투자는 4.7% 감소할 것으로 산업연구원은 내다봤다.
지방 상황이 최악이다. 지난 4월 기준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은 2만6000여 가구인데, 이 가운데 83%가 지방에 집중돼 있다. ‘악성 미분양’은 단순히 주택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매개로 금융권으로도 불똥이 튀고 있다. 침체를 못 견딘 건설사가 줄도산하면서 지방은행 연체율은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지방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는 한 건설투자는 살아나기 어렵다. 정부는 지난 2월 최대 3000가구의 준공 후 미분양을 매입해 공공 전세주택으로 활용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부 지원을 기대하며 할인 매각을 거부하고 버티는 사업장이 적지 않아서다. 다주택자 규제로 지방 매수 수요가 제한적인 것도 문제다.
이대로 손을 놓고 있으면 정상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건설은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올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0.1%로 17개 분기 만에 역성장했는데, 건설투자의 GDP 기여도는 무려 -1.5%포인트였다. 건설투자가 제자리걸음만 했어도 GDP는 1%대 성장률을 기록했을 것이란 얘기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처럼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로 건설업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물론 SOC 투자는 단기적인 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로봇, 항공우주 등 첨단 산업을 놓고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 단순한 돈 풀기가 아니라, 건설 사업 자체의 수익 구조를 바꾸는 구조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방 건설 시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질서 있게 정상화를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새로운 투자 수요가 기대되는 분야에 과감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우선 정부가 계획만 세워놓고 집행을 미루고 있는 60조원 규모의 부동산 PF·건설 펀드를 조속히 가동해야 한다. 사업성 없는 프로젝트는 과감히 정리하고, 살릴 수 있는 사업장엔 자금이 흘러가도록 하는 ‘옥석 가리기’가 시급하다. 서울과 지방 간 주택시장 양극화 해소도 중요하다. 지방과 달리 서울 집값은 공급 절벽 우려 속에 ‘똘똘한 한 채’ 수요가 몰려 이상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초과이익환수제 같은 규제를 완화해 재건축을 촉진하면 공급 확대는 물론이고 건설사 수주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무엇보다 건설산업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 국내 주택시장에만 머물지 않고 해외에 진출하는 것은 기본이다. AI 시대 필수인 데이터센터와 전력난 해소를 위한 원자력발전소 등으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 특히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들이 해외 기업과 협업해 진출한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에서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울러 중소 건설사의 처벌 비중이 가장 높은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선하는 논의도 절실하다. 정부와 건설업계 모두 손을 놓고 기다릴 여유가 없다. 위기를 근본적인 개혁과 과감한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