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진 칼럼] 증시 레벨업의 '마지막 퍼즐' 상속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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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진 칼럼] 증시 레벨업의 '마지막 퍼즐' 상속세

지방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A대표는 공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창업 30년의 손때 묻은 기계들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직접 확인하는 일상이다. 요즘 대세라는 인공지능(AI) 연관 산업에 몸담고 있어 당장 매출 걱정은 크지 않다. 하지만 칠순을 앞둔 그에게 가장 큰 고민은 따로 있다. 바로 상속 문제다. 최고 60%의 상속세를 맞으면 가족 경영권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요즘 사모펀드(PEF) 관계자들이 찾아온다. 홍콩 등 외국계 투자은행(IB) 출신에 재계·금융계 인맥까지 두터운 이들은 회사를 높은 가격에 인수해주겠다고 제안한다. 매각 후에도 경영은 그대로 맡기되, 최고재무책임자(CFO)만 자신들이 선임해 기업 가치 제고 후 상장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남긴 지분은 상장 후 지금의 몇 배 가격으로 팔 수 있을 것이라는 달콤한 말도 곁들인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강세를 이어온 코스피지수가 추석 연휴 직전 사상 처음으로 3500을 돌파했다. ‘코스피 5000 시대’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으로 흘러가는 시중 자금을 생산적인 증시로 유도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신뢰 회복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지난 7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1차, 8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임을 담은 2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자사주 강제 소각을 담은 3차 상법 개정안도 추진이 예고됐다. 기업에 족쇄라는 우려가 크지만, 증시는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호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증시에 부담이 되면 정책 수정도 마다하지 않았다. 7월 발표된 세제개편안에서 주식 양도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자 역풍이 거셌다. 연말 대주주 물량 출회 우려로 증시가 조정받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준을 원상 복귀시켰다. 이어 주가 조작에 대해서는 “패가망신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매수 필요성까지 언급하며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MSCI 선진시장 편입을 위한 종합 로드맵도 연내 발표하기로 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증시 친화적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그 덕분에 대미 투자 협상 등 대외 불확실성에도 증시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증시 밸류업의 마지막 퍼즐은 아직 남아 있다. 바로 상속세다. 기업 오너들의 상속세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두 번 상속하면 회사가 사라진다”(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실제 락앤락, 쓰리쎄븐, 유니더스 등이 상속세 탓에 경영권 승계를 포기했다. 오너들이 상속세 때문에 주가 상승을 꺼린다는 이야기는 증권가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50%)은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여기에 최대주주 할증(20%)까지 더한 실효세율은 약 6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개인 상속 공제 한도를 10억원에서 18억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공식화했지만, 기업 상속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제 기업 상속세에 대해서도 ‘부자 감세’라는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난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 완화, 상속세율 인하 등 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기업 오너가 상속세 부담에서 벗어난다면 주가 부양에 더 적극 나설 것이다. 주가 상승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사주 소각 강제 같은 장치 없이도 증시는 스스로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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