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스마트 파이프'가 AI 패권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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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용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입체통신연구소장백용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입체통신연구소장

오늘날 세계는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기술 패권 경쟁 한복판에 서 있다. 과거 패권이 식량과 자원, 군사력, 반도체에 의해 결정됐다면 이제는 AI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AI는 단순히 한 분야 기술이 아닌, 산업·국방·금융·문화 등 전 분야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 총체적 기술로서 국가 경쟁력의 본질로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은 AI 세계 3대 강국(G3) 도약을 목표로 선언하고, 다양한 정책과 투자를 추진 중이다. 이 경쟁은 세 가지 핵심기술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째는 초거대 언어모델(LLM)과 같은 독자적 AI 모델 확보이고, 둘째는 이를 학습하고 추론할 수 있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구축이다. 그리고 셋째는 이 기술들을 실제 산업과 생활에 적용하는 AI 서비스 모델 실현이다.

이 중에서도 AI 서비스 모델은 AI 기술을 '돈이 되는 기술'로 전환하는 데 있어 핵심적이다. 아무리 뛰어난 모델과 인프라가 마련돼도, 사용자에게 이를 적시에 제공하지 못한다면 산업적 파급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통신망이 AI 기술을 현실화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부상한다.

기존 통신망은 데이터를 단순히 전달하는 '덤 파이프(Dumb Pipe)' 역할에 머물렀고, 그 위에서 빅테크 기업은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해 왔다. 그러나 AI 시대 통신망은 더 이상 단순한 연결 수단이 아니다. 이제는 AI 기능이 내재된 지능형 인프라, 즉 '스마트 파이프(Smart Pipe)'로 진화 중이다. 스마트 파이프는 초고속·저지연·고신뢰·보안성을 기반으로, AI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구동시키는 핵심 인프라다.

스마트 시티, 자율주행, 원격의료, 산업 자동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시간 AI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려면, 기존 네트워크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스마트 파이프는 동적 품질 제어, 상황 인식 기반 트래픽 최적화, 확정적 지연 및 연결 보장 등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다.

더 나아가 스마트 파이프는 AI 서비스 제공뿐 아니라, AI 학습에도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 사용률이 낮은 야간 시간대에는 남는 자원을 활용해 분산 학습이나 연합 학습을 수행할 수 있다. 이는 막대한 데이터 흐름을 요구하는 AI 환경에서 효율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말 그대로 'AI 고속도로' 구축의 출발점이다.

최근 빠르게 확산하는 AI 에이전트 등장도 주목할 만하다. AI 에이전트 간 상호작용, 즉 A2A(Agent-to-Agent) 통신은 앞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하고 지능화된 통신망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위성통신이 결합하면, 드론·로봇·자율주행차 등 물리적(피지컬) AI 장치들을 지리적 제약 없이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글로벌 AI 서비스 생태계가 완성된다.

결국 스마트 파이프는 단순한 네트워크 기술을 넘어, AI 생태계를 작동시키는 디지털 순환로이자 산업 전반 혁신을 이끄는 인프라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 인터넷 속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AI 기반 네트워크 기술 개발과 투자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 비해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스마트 파이프 구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과 도약을 위한 필수 전략이다. 대한민국이 AI 3강으로 도약하려면 소버린 AI 모델, AI 반도체, 그리고 스마트 파이프라는 세 축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는 단순히 '속도가 빠른 나라'를 넘어, AI를 가장 잘 운용하고 서비스하는 국가, 곧 'AI 고속도로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기술 패권의 미래는 결국 누가 먼저 더 똑똑한 네트워크, '스마트 파이프'를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

백용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입체통신연구소장 yongb@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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