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선에서 중도 보수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28.5%의 득표율로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PD)을 큰 격차로 따돌리고 제1당에 올랐다. 극우 성향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20.8%로 제2당이 돼 독일 정치의 급변을 예고했다. 중도 진보인 집권 사민당은 1887년 이후 최악인 16.4% 득표율로 제3당으로 주저앉았다.
독일 집권당이 참패한 가장 큰 배경은 경제난과 이민자 문제다. 한마디로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안전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2023년 -0.3%에 이어 지난해 -0.2%로 2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했다. 경기 침체가 올해까지 이어져 독일 통일 후 처음으로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유럽연합(EU)을 대표하는 경제 대국이 ‘유럽의 병자’라는 조롱을 듣는 신세가 됐다. 이민자들의 잇따른 흉악 범죄로 인한 치안 불안도 유권자의 등을 돌리게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부른 에너지 위기로 치솟은 전기요금 역시 민생고 가중과 독일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제1당이 된 기민·기사당 연합은 3년여 만의 재집권이긴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이끌던 때와 확연히 다르다. 차기 총리를 예약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 대표는 취임 후 독일 국경을 통제하고 불법 입국을 막겠다고 공약했다. 세금 인하와 복지 지출 삭감도 약속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탈원전 철회까지 시사했다는 점이다. 메르켈의 라이벌이던 그는 “효과 없는 녹색 에너지 정책이 에너지 위기를 초래했다”며 “구체적 대안 없이 원자력발전소가 폐쇄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롤모델’이던 독일이 원전을 다시 가동할지 주목된다.
지난해 영국과 프랑스 총선에서 집권당이 참패한 데 이어 독일 집권당도 같은 길을 걷게 됐다. 각국의 사정이 다르겠지만 경제를 살릴 능력도, 잘못된 정책을 과감하게 수정할 용기도 없었다는 공통점은 있다. 사사건건 대립만 하고 문제 해결엔 손 놓은 한국 여당과 야당은 어떤가. 여당인지 의심스러운 무기력한 국민의힘, 내 편 네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는 더불어민주당 모두 국민 눈에는 쌍둥이 ‘못난이 인형’처럼 비친다. 어느 쪽에도 표를 주고 싶지 않은 유권자가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