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과대학이 ‘도전·혁신 공학인재 양성과 대학의 역할’ 포럼을 개최해 ‘한국형 천인계획’을 새 정부에 제안했다. 해마다 이공계 신입생의 1%에 해당하는 1000명의 인재를 파격 지원해 글로벌 기술 생태계를 주도하자는 것이다. 중국이 2008~2018년 진행한 천인계획에 힘입어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 우주항공 등 전략산업에서 급성장한 점에 착안했다.
국가 주도의 ‘AI 혁신 연구원’ 설립 제안도 내놨다. 신진 연구자 200명을 선정해 5억원 이상 연봉, 주택 제공 등 파격 혜택을 제공하자고 제언했다. 중국도 천인계획 당시 최대 9억원의 연구비는 물론이고 주택·생활비를 지원했다. 서울대는 수월·융합·창의 인재 육성을 위해 매년 학부생 40명을 선발해 3년간 집중 지원하는 ‘엑셀 프로젝트’ 구상도 밝혔다.
높은 제조업 경쟁력을 지닌 만큼 지금부터라도 분발하면 AI 산업대전환에서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다는 게 서울대 공대의 진단이다. 불감청고소원의 제안이지만, 언제부터 한국이 중국 인재정책을 따라 하는 처지가 됐나 하는 씁쓸함도 든다. 미국 기술 패권에 도전할 정도로 급성장한 중국 과학기술의 힘은 ‘대학 굴기’에서 비롯됐다. 최근 영국의 한 평가기관(THE)이 매긴 세계대학 순위에서 아시아 선두권은 칭화대(12위)·베이징대(13위)였다. 한국은 뒷걸음질이다. 국내 1위 서울대(62위)가 10년 전까지 이름조차 생소했던 중국 저장대(47위)에도 밀린다.
이러니 올 예상 AI 부족 인력만 1만4900명으로 집계된다. 오죽 답답했으면 LG가 AI 인재 양성을 위해 자체 대학원 설립에 나섰을 정도다. 17년간 등록금을 사실상 동결한 교육 포퓰리즘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유치원, 초·중등교육 현장에는 눈먼 세금이 넘치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대학에는 돈이 말랐다. 과학기술이 국력의 척도인 시대에 인재가 열악한 국내 연구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최우수 인재가 안정적인 미래를 좇아 의대로 몰려가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처럼 왕성한 창업 생태계는 언감생심이다. 최근 3년 새 국내 벤처투자는 3분의 1 토막 나고, 해외로 본사를 옮긴 스타트업은 10년 새 6배로 급증했다. 해외 인재 유치와 함께 이공계 대학·연구·산업계를 아우르는 합리적 보상체계 설계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