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모범생 콤플렉스…설익은 규제가 AI 싹부터 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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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4.11 17:56 수정2025.04.11 17:56 지면A23

정부가 인공지능(AI) 기본법 시행 시점을 내년 1월로 못 박으면서 과잉 규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콘텐츠에 보조적으로라도 AI 기술을 활용할 경우 이를 고지해야 하는 의무를 갖는다’는 제31조가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예컨대 AI 기술로 60대 배우의 30대 모습을 구현했다면 해당 장면에 AI 기술을 썼다는 각주를 붙여야 한다. 벌써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이 AI 사용 고지와 관련한 규제를 세계 최초로 시행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 중론이다. 알림 메시지가 덕지덕지 붙어 몰입이 힘든 한국 콘텐츠를 누가 사가겠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AI 기본법은 AI 분야의 헌법에 해당하는 상위법으로 AI 기업이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하는 지침서 역할을 한다. 법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규제 도입을 서두르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유럽연합(EU)은 AI 기본법과 유사한 인공지능법(AI Act)을 일찌감치 제정했지만 기업에 부담을 주는 규제는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국제 사회에서 하루빨리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조급증 때문일까.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세계 각국이 보조를 맞추는 의제를 법제화하는 데 적극적이다. 문제는 이런 ‘모범생 콤플렉스’가 국익 훼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는 데 있다. 탄소중립 기본법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감축하겠다고 깜짝 선언했다. 기존 목표보다 감축량을 14%포인트 높였고, 일사천리로 법제화까지 진행했다. 결과는 아는 대로다. 우리 기업의 환경 비용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특정국이 다국적기업에 15%보다 낮은 법인세 실효세율을 적용하면 다른 나라에 차액만큼 추가 과세권을 부여하는 ‘최저한세법’도 다른 나라보다 한발 앞서 도입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세율이 낮은 국가에 투자한 기업은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

국제사회의 인정보다 중요한 것이 국익이다. 방향이 옳다고 선제적으로 규제를 도입했다가 그 부담이 기업과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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