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 현금 자산 절반을 태우라는 '자사주 강제소각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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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9.24 17:38 수정2025.09.24 17:38 지면A31

국내 상장회사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때 강제로 소각해야 하는 주식 규모가 72조원에 육박한다는 한경 보도(9월 24일자 A1, 5면)다. 상장사들이 보유한 전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의 절반을 웃도는 막대한 규모다. 미래 성장 재원으로 쓸 수 있는 자사주를 단기 주가 부양을 위해 불태워야 한다면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다름없다.

국내 상장사의 71.5%는 평균 4.5% 지분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상장사들은 주가 방어나 유동성 확보, 경영권 방어 등 다양한 이유로 자사주를 사들였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를 통과하면 유예기간 안에 자사주를 강제로 없애야 한다. 물론 자사주를 소각하면 단기적으로 주가에 긍정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주가 부양을 막고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기업은 비상시에는 자사주를 팔아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고, 평상시에는 자사주 매각 대금을 설비투자나 연구개발(R&D)비로도 쓸 수 있다. 기업별로 사정이 다를 텐데 의무적으로 소각하라고 하면 기업의 장기 성장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경영권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도 있다. 현재 571개인 ‘경영권 위협 가능 상장사’(최대주주·우호 지분 30% 미만)가 자사주 소각 이후엔 707개로 급증할 것(자본시장연구원)이라고 한다. 무조건 자사주를 소각해야 한다면 기업이 자사주를 사들일 유인도 줄어든다. 해외 주요국 가운데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의무화한 국가가 드문 이유다. 영국과 일본, 미국의 델라웨어주와 뉴욕주 등은 자사주를 자유롭게 보유하거나 활용할 수 있게 한다.

당정은 경제계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당근책’으로 배임죄 완화를 내밀고 있지만 이는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한 1차 상법 개정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한 방안일 뿐이다. 자사주 의무 소각에 따른 후폭풍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기존 자사주 보유분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하거나 상당 기간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 마련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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