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 한국국제통상학회장(서강대 교수)이 한국경제신문에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에 실패한다면 한국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출과 제조업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관세 충격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치명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허 회장은 “현 관세율대로라면 하반기 수출은 200억~300억달러 감소해 연간으로 6500억달러에 그칠 것”이라며 “내년에는 6200억~6300억달러에 머물며 2년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이 0%대를 헤맬 것으로 우려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최근 상호관세 25%에 철강·알루미늄 50%, 자동차·부품 25% 부과 등을 전제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3∼0.4%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 0.8% 성장을 전망한 한국은행은 상호관세 15% 수준을 가정한 것이어서 관세가 현 수준에서 결정될 경우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
트럼프발 관세 충격은 이미 우리 기업 실적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2분기 역대 최대 매출에도 영업이익이 곤두박질쳤다. 현대차 영업이익은 5년 만에 10% 넘게 감소했고, 기아는 11분기 만에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이 깨졌다. 냉장고·세탁기에 ‘50% 철강 관세’가 부과된 LG전자도 2분기 영업이익이 반토막 나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 한국 협상팀은 미국 현지에서 릴레이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30~31일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회동할 예정이다. 다음달 1일 협상 기한이 임박하면서 농산물 추가 개방과 조선업 협력 방안 등이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는 소식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농업 분야를 협상의 제물로 삼지 말라”고 했지만 국가의 운명 앞에 이해관계 집단의 유불리를 따질 때가 아니다. 타결 실패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남은 ‘운명의 4일’ 동안 정부는 필사적으로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