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일본과 호주에 ‘대만 문제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아시아태평양 핵심 동맹국들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미국과 전쟁하는 시나리오에 대해 구체적 대응 방안을 내놓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보도 뒤 SNS에 이를 인정하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국방 정책의 설계자로 꼽힌다.
미국의 요구는 동맹국들이 미중 전쟁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는 것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올 초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대만 방어 의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미 국방부는 중국의 대만 점령 저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잠정전략 지침을 내부에 배포했다. 이르면 9월 발표할 새 국가방위전략(NDS)의 뼈대가 되는 문건이다. NDS 발표를 앞두고 나온 미국의 압박은 군사력을 대만 방어에 집중한다는 전략 아래, 동맹국들에 그 부담을 나눠 지라는 선언이 임박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 사정권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콜비 차관은 ‘주한미군을 북한 문제의 인질로 잡아둬서는 안 된다’며 주한미군 역할을 중국 억제로 돌리고 북한의 재래식 무기 위협은 한국이 맡아야 한다고 강조해 온 인물이다. 지난주 한국을 찾은 미 합참의장이 북-중의 군사 위협을 함께 거론하며 한미일의 ‘진정한 책임 분담’을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만 유사시를 전제한 주한미군 재배치, 그에 따른 대북 군사 태세 변화 가능성에 대한 섬세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 호주에 던졌던 질문을 한국에도 해올 것이다. 한중 관계를 개선하려는 이재명 정부로선 곤혹스러울 수 있다. 미국의 압박이 현실화되고 있는 이상 대선 때처럼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는 식으로 문제를 피할 수만은 없다. ‘북한 이슈는 대만과 상관없다’는 접근으로는 ‘동맹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미국에 설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미동맹과 한중관계, 대북정책과 대만 문제라는 서로 얽힌 현실을 꿰뚫는 ‘안보 대(大)전략’이 시급해졌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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