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헌정사상 두 번째로 파면됐다. 헌법재판소는 어제 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윤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5년 임기 중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불과 8년 만에 정치 흑역사를 다시 남겼다. 언제까지 정치가 정치 영역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사법에 의해 재단되는 일이 반복돼야 하는지 안타깝고 갑갑하다.
헌재의 탄핵 선고문을 읽어보면 우선적으로 윤 대통령의 과오와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는 탄핵소추 사유 5개를 모두 인정했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계엄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야당의 권한 행사가 부당하더라도 거부권 등 사법적, 제도적 수단으로 대처할 수 있는데 군경을 동원해 국회 권한을 방해하고,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며,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한 것은 중대한 위헌, 위법이라는 것이다. 헌재의 이런 지적이 아니더라도 야당의 폭주에 윤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 탄핵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는 아니다. 헌재가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소추, 감액 예산 단독 의결, 법안 일방 통과 등을 언급하며 이로 인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으로 볼 수 없고,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는 질타는 야당이 깊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탄핵은 정치권 모두의 패배다. 행여라도 대통령 파면을 입법권 무한확장 면허 획득으로 여긴다면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파면이 더 이상 혼돈과 분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탄핵 반대 측은 허탈감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요, 국민적 약속과 합의의 응축물이란 점에서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탄핵 찬성 측도 개선장군처럼 으스댈 게 아니라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다. 상호 자제와 관용이 사라져 극단적 대결이 지속되고,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이 멈춘다면 그 해악은 나라와 국민 모두에게로 향할 것이다.
국정 안정화도 시급하다. 나라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의 관세 폭탄 등 통상 압박 대처가 시급하지만, 뚜렷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조속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해 정상외교를 복원하고, 해법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안보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미국의 핵우산과 억지력에 기댈 수 없는 처지고, 대만 위기 시 주한미군 차출설도 나온다. 북·러 밀월에다 한국을 건너뛰고 미·북 소통 채널 가동 얘기도 들린다. 통상과 안보 위기 대응엔 정부와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제 60일 내에 대선을 치른다. 위기를 헤쳐 나갈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해야 하지만, 선거 기간이 짧은 데다 인수위원회 과정도 없어 제대로 준비 안 된 정부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은 걱정거리다. 촉박한 시간에 유권자들이 후보의 수권 역량을 제대로 판별할 수 있을지도 우려된다. 단기 승부여서 선거판이 포퓰리즘에 휩싸일 공산도 크다. 이런 저급한 경쟁은 경제와 나라를 망치는 길이다. 다급한 과제는 내전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극단적 분열을 수습하는 것이다. 화해와 치유가 아니라 진영 대결을 부추겨 표를 얻겠다는 행태를 보인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더 이상 과거와 싸우다 미래를 희생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이제 탄핵 정국을 끝내고 질서 있는 수습이 필요하다. 탄핵을 그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더 강한 대한민국을 그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민은 광장의 먼지를 털고 일상에 매진하길 바란다. 정치권은 추가경정예산, 국민연금 구조개혁, 반도체법 등 눈앞의 과제부터 국회의원 특권 철폐를 비롯해 후진적 정치를 뜯어고치는 것까지 해야 할 일이 많다. 전쟁의 폐허에서 간난신고 끝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대한민국이다. 정치로 인해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 피땀 흘려 일군 성과들이 허물어져선 안 된다. 헌정사 비극은 어제로 끝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