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생존의 유산, 다양성
알타미라 동굴의 발견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은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 동굴 예술을 보여준다. 이 동굴은 1879년 스페인의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사우투올라가 여덟 살짜리 딸과 함께 발견했다.
알타미라 동굴 사건은 현대 서양 문명, 나아가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얼마나 강한지를, 때론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동시에 ‘빙하기 시대 사람들의 엄청난 예술성과 천재성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빙하기 시대 쏟아진 예술품
최근 들어 동굴 벽화를 남긴 화가들의 특성은 ADHD와 자폐 스펙트럼의 특성과 매우 유사하다는 주장이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출신 화가 스티븐 윌트셔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미국 뉴욕 맨해튼을 헬리콥터로 잠깐 돌아보고 나서 며칠에 걸쳐 순전히 기억력에 의존해 사진처럼 똑같이 그려냈다. 물론 윌트셔는 사진처럼 정지 화면을 복원했지만,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의 화가들은 살아서 움직이는 동물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는 있다.
어쨌거나 잠깐 본 기억을 머릿속에서 다양하게 조합하고 특정한 디테일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기법은 일맥상통한다. 이를 두고 고고학자들은 과거에 ADHD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구석기 시대의 예술이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 이미지를 상징화하고 주술적인 의미를 담아냈다는 이유에서다.
빙하기, 자폐가 필요했던 이유
5만 년 전∼1만 년 전 사이의 혹독한 빙하기 환경은 인류에게 큰 시련이었다. 약 3만 년 전에는 최후 빙하기가 최정점에 달했다. 중부와 북부 유럽은 두꺼운 빙하로 덮여 있었고, 그나마 사정이 나은 스페인 등의 남부 유럽도 평균 기온이 영하 2도∼영하 9도였다. 지역적 편차가 있겠지만, 대체로 지금의 북극권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무리 추위에 대비해도 겨울에 야외에서 2∼4시간 이상을 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동굴 속에서 지내야 하지 않았을까.
최근 괴베클리 테페의 발견으로 인류는 구석기 시대 말기에 이미 많은 문명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빙하기를 견디면서 천재성에 기반한 기술의 발전이 쌓여 있었고, 그것이 동굴이 아니라 들판으로 옮겨져 발현된 것이다.
AI 시대, 다양성의 가치
우리는 평준화된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다름을 치료나 교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그러한 습성은 인류 생존의 큰 위기였던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생존의 무기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범한 감각으로 자연의 특징을 간파했고, 남다른 집중력으로 새로운 도구를 만들며 신을 상상하고 예술을 창조했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 빙하기를 이겨내고 인간의 능력을 일취월장시켰던 그들의 능력은 농경사회의 탄생과 함께 죄악시됐다. 주의력 결핍은 공동체에서 일탈로 간주되기도 했다. 구석기 시대에 필수적이었던 주의력 결핍자들이 보인 고도의 집중력과 신속한 대치력은 농경사회에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만 년을 지배해 온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지식과 노동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기존의 직업은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반복적이며 데이터에 기반해 판단을 내려야 하는 업무는 AI의 도움으로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ADHD적 특성과 자폐 스펙트럼이 가진 창의성, 고도의 집중력, 적응력, 발상의 전환은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존에는 비현실적으로 여겨진 ADHD적 아이디어가 AI의 보조로 혁신적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견해도 늘고 있다.
다양성은 위험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빛나는 생존의 유산이다. AI 시대의 생존전략은 표준화된 인간이 아니라 ‘남과 다른 인간’에게 달려 있다. 그러한 다양한 특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그뿐 아니라 예술과 종교를 비약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성이 필요한 지금, 고고학적 통찰과 ADHD와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전향적 태도가 필요한 이유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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