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 한때 세계 최고 부호에 올랐던 빌 게이츠 이사장이 지난 20~22일 짧은 방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최태원 SK 회장을 비롯한 SK 측 인사들과 세 차례나 만난 것으로 알려져 이목이 쏠린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를 중시하는 빌 게이츠 재단과 SK그룹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사업 협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게이츠 이사장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SK그룹의 백신 생산 능력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2022년에는 최 회장을 만나 백신 분야 협력을 논의했고, 이번 방한 기간 이재명 대통령과 만나서도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을 거론하며 “K-바이오가 경이롭다”고 극찬했다.
일찌감치 1990년대 저소득 국가를 위한 백신 개발, 치료제 보급 등 글로벌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사재를 출연해 재단을 설립한 게이츠 이사장은 3년 전 방한 당시 SK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 경영’에 대한 설명을 듣고 깊이 공감했다고 한다.
게이츠 이사장은 공익재단도 아닌 민간기업인 SK가 사회적 가치를 꾸준히 추진하고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온 점을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다고 SK 측은 귀띔했다. 최 회장이 강조하고 SK그룹이 오랫동안 추진해온 △사회성과인센티브(SPC·Social Progress Credit) △DBL 경영(재무적 성과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 추구하는 경영) △신(新)기업가 정신 등에 귀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특히 경영자인 게이츠 이사장이나 최 회장 모두 ‘성과 측정’을 중시하는 공통분모도 있었다. 게이츠 재단 역시 단순 기부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와 계량화된 성과에 기반해 ‘투자형 자선(venture philanthropy)’을 실천하고 있다. 투자 대상을 선정할 때도 장기적으로 측정 가능한 임팩트, 글로벌 접근성 등을 평가 요소로 삼는다.
SK그룹 또한 최 회장이 2013년 다보스 포럼(세계경제포럼)에서 ‘사회적 가치 측정과 그에 따른 보상’을 최초 제안한 이래 2018년부터 매년 각 계열사들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계량화해 발표하고 있다. SK그룹은 지난해 경제 간접 기여·환경·사회 성과 3가지 분야에서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25조8000억원으로 집계했다.
게이츠 재단이 SK그룹과 처음 협력한 것은 SK케미칼(현 SK바이오사이언스)에 장티푸스 개발 자금을 지원한 2013년. 이후 상호 협력을 확대했으며 코로나19 시기에는 SK바이오사시언스가 국제기구 감염병예방혁신연합(CEPI)과 게이츠 재단의 지원을 받아 ‘스카이코비원’을 개발하기도 했다.
게이츠 재단은 연간 500만명 수준인 아동 사망자를 200만명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앞으로도 280조달러를 질병 퇴치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내 기업들의 백신 개발·생산이 필요한 가운데 사회적 가치, 사회문제 해결이란 유사한 배경을 가진 게이츠 재단과 SK그룹의 향후 협력도 주목된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