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칼럼]해커와 함께, 한국의 보안을 한 단계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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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동 유넷시스템즈 대표이사안기동 유넷시스템즈 대표이사

최근 SK텔레콤, 롯데카드, 서울보증보험, 예스24 등 다양한 분야의 대형 기업에서 연이어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 규모는 수백만건에 달했고,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는 사이버 보안이 단순히 정보기술(IT) 부서의 전담 업무가 아니라, 기업과 기관의 존립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임을 보여준다.

공격자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새로운 수법을 끊임없이 개발해 들어오는데, 우리의 방어는 여전히 제한된 인력과 자원에 기댄 경우가 많다. '완벽한 방어'라는 환상은 이미 오래 전에 무너졌다. 이제는 공격보다 한발 앞서 취약점을 찾아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생존의 열쇠가 되고 있다.

이런 준비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하다. 정기적으로 취약점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것은 기본이며, 실제 해킹을 가정한 모의훈련과 침투 테스트를 통해 방어 태세를 검증해야 한다. 또 임직원 모두가 보안의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보안 교육을 정례화하고, 피싱 메일이나 사회공학적 기법에 흔들리지 않도록 훈련해야 한다.

보안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에 정보보호 및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인증(ISMS-P)이나 국제 결제 산업 데이터 보안 표준(PCI DSS)과 같은 규제를 철저히 준수하는 것은 기본이다. 무엇보다 사고가 터진 뒤 땜질식으로 수습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차단하는 보안마인드를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기술 담당자에게만 맡길 문제가 아니라, 경영진과 조직 전체가 참여해야 하는 기업의 핵심 전략 과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접근법이 바로 버그 바운티(Bug Bounty)제도다. 버그 바운티는 전 세계 윤리적 해커들이 기업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발견한 취약점을 신고하면 이에 대해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는 제한된 내부 인력만으로는 결코 확보할 수 없는 수많은 외부 전문가의 시각과 기술을 기업 보안에 끌어들이는 효과적인 장치다.

미국 국방부(DoD)는 '해킹 더 펜타곤'(Hack the Pentagon)이라는 이름으로 버그 바운티를 도입해 큰 성과를 거뒀고,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 같은 글로벌 IT 기업뿐 아니라 금융·제조·통신 분야의 선도 기업들도 속속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GM, 페이팔, AT&T 등도 심각한 보안 위협이 사고로 이어지기 전에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버그 바운티의 가능성을 가장 잘 실현하고 있는 플랫폼이 바로 해커원(HackerOne)이다. 전 세계 240만명이 넘는 윤리적 해커가 참여하는 이 거대한 커뮤니티는 단순한 취약점 신고 창구(VDP)를 넘어섰다. 해커원은 버그 바운티 운영뿐 아니라 침투 테스트, 특정 목표를 겨냥한 공격 시뮬레이션, 소스 코드 보안 감사, 그리고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검증하는 AI 레드팀까지 운영한다. 즉, 단일 차원의 보안 점검이 아니라 입체적이고 지속적인 방어 역량 강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과 기관들이 직면한 규제 준수 요구와 글로벌 보안 수준 강화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해법 중 하나다.

이제 한국도 보안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울타리 안에서의 방어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위협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글로벌 위협에는 글로벌 협력이 필요하다. 기업과 기관은 '사고 이후 대응'이 아니라, '사고 이전 차단'을 목표로 한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보안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지켜내는 투자이며, 기업 신뢰와 생존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노력이 시작될 때, 한국의 보안 수준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안기동 유넷시스템즈 대표이사 akd@un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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