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봄날은 간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와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이영애)는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을 위해 함께 녹음 여행을 다니며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사랑에도 온도 차가 있던가. 주체할 수 없이 빠져들던 상우의 사랑과 달리 은수의 사랑은 조금씩 식어가기 시작한다. 다짜고짜 헤어지자는 은수에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지만 은수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헤어져.”
영화 ‘봄날은 간다’는 사랑을 그리는 멜로드라마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계절과 시간의 흐름을 담았다. 추운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은 따뜻한 봄날에 사랑을 꽃피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만개한 채 영원할 것만 같았던 봄날의 달달함은 여름을 맞이하며 시들어 간다. 상우는 은수의 이별 선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죽을 것만 같던 아픔의 시간들 또한 지나가고 또다시 봄이 온다. 그리고 벚꽃이 만발하던 어느 봄날 은수를 만난 상우는 담담한 이별을 한다. 결국 봄날은 지나가고, 사랑도 변하지만 그 기억은 영원히 남는다는 걸 상우는 받아들이게 된다.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어김없이 이 영화가 떠오른다. 이맘때면 가슴 설레는 벚꽃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곧 지나가 버릴 봄날의 아쉬움은 매년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상우는 물었지만, 사랑만 변할까. 사람도 변하고 세상도 변한다. 사회도 변하고 정치도 변하며 경제도 바뀐다. 엄혹한 겨울의 시간을 겪는다고 해도 결국 따뜻한 봄날은 오기 마련이고, 그 영원할 것 같던 따뜻한 나날들 역시 금세 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하고 기억하려 한다. 끝내 변하고야 마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애써 붙잡기 위해서다. 상우가 변화해 가는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듯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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