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의 월윈드GC(파72) 18번홀(파4). 연장 1차전에서 김효주(30)의 티샷을 맞고 페어웨이에 자리 잡은 공 위에 무당벌레 한 마리가 앉았다. 세계랭킹 6위 릴리아 부(미국)와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펼치는 순간, 김효주는 무당벌레가 날아가길 기다린 뒤 두 번째 샷을 쳤다. 부의 공은 핀에서 3m, 김효주의 공은 1.5m. 부의 버디퍼트가 홀을 비켜간 뒤 김효주는 가볍게 버디퍼트를 잡아내 우승을 확정 지었다. 1년5개월여 만에 달성한 투어 통산 7승. 김효주는 “서둘러 치려다가 무당벌레가 날아가길 기다린 것이 저에게 행운이었다”며 활짝 웃었다.
김효주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포드 챔피언십(총상금 225만달러) 마지막 라운드에서 버디 9개, 보기 1개로 8타를 줄이며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우승상금 33만7500달러(약 5억원)를 추가해 LPGA투어 역대 28번째로 통산상금 1000만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선수로는 박인비, 양희영, 고진영 등에 이어 아홉 번째다.
◇“중학교 이후 퍼팅 가장 많이 연습”
김효주는 완벽한 스윙으로 유명하다. 유연한 몸을 이용한 완벽한 스윙템포, 다양한 쇼트게임 기술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에게는 늘 ‘골프천재’라는 말이 따라다녔고, 수많은 프로가 그를 롤모델로 꼽았다.
2012년 10월 프로로 데뷔한 뒤 한국 무대를 일찌감치 평정했고, 2014년 비회원 자격으로 참가한 2014년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미국으로 무대를 옮겼다. 2023년 10월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까지 6승을 올리는 등 한국 여자골프의 간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난해 김효주는 다소 침체를 겪었다. 18번 출전한 LPGA투어 대회에서 톱10을 세 번 기록하는 데 그쳤다. 시즌 최종전 CMW그룹 투어 챔피언십 출전권을 턱걸이로 확보한 것은 ‘골프천재’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만회를 다짐하며 올겨울 김효주는 칼을 갈았다. 체력훈련과 함께 퍼트를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지난 시즌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 퍼트라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김효주는 “중학교 이후 이렇게 퍼트 훈련을 많이 한 적이 없다”며 “모든 홀 그린에서 7m 거리의 슬라이스와 훅 경사에서 목표를 정하고 성공할 때까지 연습했다”고 했다. 올해로 서른, 적잖은 여자 프로들이 은퇴를 고민하는 나이다. 김효주 역시 “예전과 확실히 몸이 다르다. 회복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예전보다 지금 골프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고 더 잘하고 싶다는 열정이 크다”고 말했다.
김효주가 선택한 전략은 달라진 몸에 맞춘 훈련이다. 체력훈련으로 몸을 키워 파워는 좋아졌지만 갈수록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요가를 새롭게 추가하고, 회전운동을 늘렸다. 유연성을 확보해 힘을 더 효율적으로 뽑아내겠다는 전략이다.
◇“나는 아직 우승할 수 있는 선수”
그렇게 시작한 2025시즌, 김효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앞서 치른 네 번의 대회에서 두 번 톱10에 들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겨우내 훈련한 퍼팅이 빛을 발했다. 선두 부에게 4타 뒤진 채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김효주는 신들린 퍼트를 앞세워 전반 9홀에서만 5타를 줄이며 단숨에 따라잡았다.
이날 김효주는 퍼터를 단 24번 잡았다. 위기에서 그를 구한 것 역시 퍼트였다. 12번홀(파5)에서 티샷이 물에 빠지면서 뼈아픈 보기를 기록하며 부와 티띠꾼에게 공동선두를 내줬지만, 16번홀(파4)에서 약 6m 거리 버디퍼트로 추격을 물리쳤다. 17번홀(파5)에서는 그린 바로 옆에 떨어진 공으로 2퍼트 버디를 잡아 단독선두로 올라섰다.
김효주는 “아직 우승할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증명해 뿌듯하다”며 “겨울 전지훈련에서 열심히 훈련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