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기 금융업계에서도 예측 실패로 인한 애물단지가 탄생한다. 1999년 나온 1세대 실손보험이다. 가입자의 자기부담금은 아예 없거나 극히 소액이었고, 적용 범위는 한마디로 ‘안 되는 게 없는’ 정도였다. 경제학이나 수학 석박사가 즐비한 보험사들이 복잡한 수식을 바탕으로 설계한 이 상품은 ‘병원 쇼핑족’이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 수익성이 곤두박질했다. 동네 정형외과는 도수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의 ‘사랑방’이 됐고, 이들의 치료비는 모두 보험사에 청구됐다.
▷실손보험 정책은 이후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2009년 10∼20%의 자기부담금이 생긴 2세대, 2017년 도수 치료 등 일부 비급여 항목을 기본 보장에서 제외한 3세대, 2021년 비급여 항목 전체를 특약으로만 보장하는 4세대로 각각 진화했다. 세대 전환 기간도 10년→8년→4년으로 짧아졌다. 그런데 보험금 수령자들의 의료기관 이용 행태 역시 빠르게 적응했다. 1∼4세대 실손보험의 위험손해율은 110∼150%로, 보험사들은 여전히 고객들에게 받은 돈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주고 있다.
▷다수 가입자들도 속이 쓰리긴 매한가지다. 작년 실손보험 가입자의 65%가 보험료를 내기만 했을 뿐 받은 적은 없다. 보험금 수령인 상위 10%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지급액 전체의 74%가 건네졌다. 다시 말해 고객 3분의 2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소수의 병원 비용을 대고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병원에 간 적도 없는데 보험료는 계속 올랐다. 이달 6일부터 나온 5세대가 비급여 항목이나 비중증 질환 치료 보장을 축소하고 자기부담금을 늘리게 된 배경이다.▷과잉 진료나 의료 쇼핑을 제한하겠다는 목적 자체는 이번에도 달라진 게 없다. 눈에 띄는 건 1, 2세대 가입자들이 일부 보장을 빼거나 5세대로 갈아타면 30∼50% 보험료를 깎아주는 ‘반값’ 정책이다. 하지만 “이제 병원 자주 다닐 나이”라며 기존 계약을 고수하겠다는 초기 가입자들이 많다. 보험사와 병원 쇼핑족 간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은 어떤 결말로 향할까. 2010년대까지도 7만 명 이상이 이용하던 ‘017 무료통화’는 2G 서비스 종료로 ‘017’ 번호를 쓸 수 없게 된 2020년에야 완전히 종료됐다.
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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