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 잘하면 될 거 같았어요."
배우 박보영의, 박보영에 의한 드라마 tvN 주말드라마 '미지의 서울'이 29일 종영했다. 마지막회 공개에 앞서 마주한 박보영은 1인2역에서 나아가 1인4역 설정을 소화해 낸 것에 대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정말 더 어려웠다"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쏟아지는연기 호평에 "뿌듯함과 고마움을 느꼈다"며 "행복했다"면서 특유의 반달 미소를 보였다.
'미지의 서울'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던 쌍둥이 언니 미래를 위해 동생 미래가 서울로 상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똑똑하지만 몸이 약했던 언니, 씩씩하고 다정하지만 공부가 싫었던 동생은 서로 약 먹기, 숙제하기 등 어릴 때부터 각자 꺼리는 것들을 대신 해주곤 했다. 쌍둥이 바꾸기는 엄마에게 호되게 혼나고 나선 잠잠해졌지만, 출석일수가 부족한 미지 대신 미래가 출석을 하는 등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대신'을 자처하며 서로를 보호해줬다.
박보영은 이런 미래와 미지의 독특한 관계, 겉모습은 같지만 전혀 다른 쌍둥이의 성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며 폭넓은 연기스펙트럼을 증명해냈다. 쌍둥이 미래, 미지 뿐 아니라 미래인척 하는 미지, 미지인 척 하는 미래까지 1인4역 상황을 소화해내며 극의 몰입도를 끌어 올렸다. 2006년 EBS 드라마 '비밀의 교정'으로 데뷔해 올해로 연기 20년차인 박보영의 내공이 오롯이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지와 미래를 연기하며 각각의 로맨스인 이호수(박진영 분), 한세진(류경수 분)과 로맨스를 펼친 것에 대해서도 "언제 두 남자와 동시에 쌍방 로맨스를 해보겠냐"면서 "마음껏 즐겼다"면서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다음은 박보영과 일문일답.
▲ '미지의 서울'이 끝났다.
= 매주 제가 생각했던, 처음 작가님의 글을 봤을 때보다 더 풍부하게 나온 거 같다.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덕분 같다. 본방을 보면서도 행복함과 뿌듯함을 많이 느꼈다. 촬영할 땐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많은 분들이 더 많이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정말 행복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 1인4역에 가까운 1인 2역 설정이 어려웠을 거 같았다.
= 촬영 전부터 고민이 많았는데, 녹록치 않았다. 대역 연기자가 리허설 할 때 제 연기를 보고, 녹화를 해서 보시면서 똑같이 연기를 하면 제가 거기에 대한 리액션을 한다. 그런데 나중에 CG나 이런걸 보니 눈높이가 안맞을 때도 있더라. 나중에는 시선을 봐야 하는 곳에 점을 찍어놓고 대역 없이 혼자서 하기도 했다. 이번에 느낀게, 제가 생각보다 계산적으로 연기하지 않았더라. 아직 맞춰보지 않은 합에서 혼자 계산하는게 어려웠다. 특히 움직일 때, 어떤 타이밍에서 어떤 대사를 하고, 도착하는 속도까지 계산해야했다. 처음 경험해보는 거라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많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였다 생각한다.
▲ 우려와 걱정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제가 대본을 보고 하고 싶었던 게, 글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저만 잘하면 될 거 같았다. 처음엔 많이 걱정했다. 제가 1회 편집본을 먼저 봤는데, (박신우) 감독님은 자신감을 싣어주려고 '보라'고 하신 거 같은데, 저는 오히려 떨어졌다. 제가 걱정한 건 박보영 1, 2로 보이는 거였다. 미지와 미래로 보여야 하는데. 첫 편집본을 봤을 땐 박보영 1, 2 같았다. 그리고 제가 생각했던 목소리 톤과도 다르게 느껴졌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차이보다 덜 나 보여서 당황했다. 그래서 편집본을 보고 더 차이를 두려고 했다. 미지와 미래가 다르게 보이는게 저에겐 컸다.
▲ 마지막 엔딩은 어땠나.
= 촬영하면서 많이 울었던 장면이 있다. 너무 슬퍼서 주체가 안돼 몸을 벌벌 떨어서 감독님이 '나갔다 와' 라고 하셨다. 할머니를 꿈에서 만나서 보내드리는데, 할머니 신을 둔다. 원래 그 대사가 없었는데, 저도 모르게 '사랑해'라고 말했다. 이렇게도 보낼 수 있을까 싶더다. 제가 보낸 사람들 중에 인사를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보내주고 싶었다. 감정을 눌러 다시 촬영을 해서 어느 정도로 나올지 모르겠다. 그리고 엔딩도 작가님 스타일의 엔딩이라 생각한다. 마침표가 아닌 열림이지만 만족도는 좋았다. 개인적으로 닫힌 결말을 좋아하지만, 미지와 미래모두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줘서, 나로 투영돼 볼 수 있도록 만든 엔딩이었다.
▲ 그동안 영화, OTT 작품에 주로 출연했다. 시청률을 확인하는 TV드라마는 tvN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이후 4년 만이더라.
= 오랜만에 매일 아침 눈뜨면 시청률을 검색했다.(웃음) 실시간 방영 반응을 보는 것도 오랜만인데, 정말 감사하게도 재밌어 하셨다. 그런 재미가 있었다. 항상 작품을 할 때마다 최선을 다하지만, 이번엔 두배로 한 기분이고, 반응도 남다른 거 같다.
▲ 미래와 미지 중에 누가 더 연기하기 편했나.
= 편한 건 없었다.(웃음) 그래도 미지는 겉으로 다 표현해도 되고, 제가 해왔던 밝은 캐릭터의 연장선이라 상대적으로 더 수월했다. 미래는 많이 절제해야 했다. 그런 부분이 어려웠다. 표정도 많이 쓰지 않고. 저는 둘 다 갖고 있는 거 같다. 사회 생활 할때는 미지, 친구들과 있을 땐 미래 모습도 있는 거 같다. 저의 모습 중에서 극대화했다. MBTI로 하면 비율로 나오지 않나. 저에겐 미래가 40%, 미지가 60% 정도 되는 거 같다.
▲ 동안의 상징인데 고등학교 시절은 아역을 썼다.
= 첫 미팅부터 감독님과 의견이 맞았다. 저는 아역을 그만하고 싶었다.(웃음) 그리고 여기서 아역까지 했으면 전 정말 살아남지 못했을 수 있다. (이)재인 씨가 정말 잘 표현해줬다. 안하길 천만 다행이었다. 그 풋풋함은 이제 안될 거 같더라. 어렵더라.
▲ 아역 분량이 빠졌지만, 그런데도 대사량이 상당했다.
= 매번 촬영할 때마다 '이걸 내가 외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강 작가님 대사엔 평소에 잘 쓰지 않는 표현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외우는 게 양에 비해 수월했다. 그래도 미지와 미래가 대화하는 대사를 외우는 건 어려웠다. 통으로 외우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각각 따로 외워야 했다.
▲ 그 와중에 미지와 미래가 서로인 척을 해야 한다. 미지와 미래가 바뀐 모습을 연기하는 건 어땠나.
= 1인2역으로 한다고 해서 너무 다르겐 하지 말자는 얘기를 감독님이 하셨다. 심지어 감독님은 '두 사람이 한 사람이라 생각해'라고 하셨다. 그래서 '톤을 완전 다르게 가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고민이 많았다. 서로 바뀌고 소통할 때는 외적인 모습도 따라하지 않나. 그래서 저희끼리 저희만 아는 디테일을 잡아보자고 해서 머리를 묶을 때도 미지는 귀 옆에 잔머리를 두고, 미래는 깔끔하게 했다. 화장할 때도 미래는 아이라인 점막을 채운다.(웃음) 더 또렷하게 보이라고. 미지는 또 주근깨가 있다는 설정이라 씻으면 생기게 했다. 단발도 사실 다르다. 길이와 컷도 미래는 조금 더 깔끔하게 했고, 미지는 샤기컷 스타일로 했다.
▲ 미지, 미래 촬영은 어떻게 했을까.
= 집을 몰아서 찍고, 회사를 몰아서 찌고 하다보니 미지로 하다가 미래를 탈바꿈을 해서 할 때 저도 모르게 리액션이 나왔던 부분들이 있었다. 그땐 감독님이 '아직 미래가 덜 온 거 같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주셨다. 그렇게 세밀하게 잡아주는 과정에서 많이 성장했다. 나중에는 옷만 입으면서 다르게 전환이 됐다. 현장에서도 미지는 장난을 치는데, 미래는 말도 안했다. 그래서 스태프도 '오늘은 미래구나', '미지구나' 했다.
▲ 미지는 시골에 있다가 서울에 온다. 박보영 씨도 고향이 충북 증평이라 밝혀왔는데, 본인의 경험도 도움이 됐을 거 같다.
= 저도 그래서 미지가 이해가 많이 됐다. 제가 살던 곳은 서울처럼 높은 건물도 많지 않았다. 야경이랄 것도 없고. 이모가 서울에 살고 계셔서 가끔 올랐는데, 그때마다 지하철이 그렇게 신기했다. 방향을 잘못탈 때도 있고, 서울은 미지의 세계였다. 서울에 와 일을 하면서 느낀게 '녹록치 않구나'였다. 그래서 미지의 마음을 많이 느꼈다. 그런 경험 때문에 대본을 좀 더 재밌게 읽었나 싶다. 또 제 고향은 조용해서 굳이 조용한 곳을 찾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서울은 조용한 곳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제가 미지처럼 한강을 좋아했다. 개인적으로 엄청 힘들었을 때 한강공원에 가서 많이 울었다. 지금도 힘들거나 펑펑 울고 싶을 때 가는 장소가 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곳에 가서 털어내고 온다. '이 정도로 올거면 다신 오지말자' 이러면서 다짐하기도 하고.
▲ 쌍둥이가 각각 동시에 로맨스를 펼친다. 연기할 땐 어땠나.
= 미지로도, 미래로도 만난다. (박)진영 씨와 (류)경수 씨는 연기스타일이 정말 다르다. 진영 씨는 호수처럼 따뜻한 에너지로 눌러주고, 경수 씨는 세진처럼 심연에 가라앉아있는 미래를 스며들도록 밝은 에너지를 심어줬다. 첫 인상은 경수가 차분하고 진영이 장난꾸러기라 생각했는데, 하다보니 제가 몰랐던 모습들이 있더라. 연기할 때 그걸 너무나 잘해줬다. 정말 미지와 미래는 꼭 필요한 존재를 만났구나 싶었다. 또 진영이도 누나가 있는데 이름이 '보영'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더 편하게 연기했던 거 같다.
▲ 개인적으론 호수와 세진 중 누가 더 좋았나.
= 한 사람을 고르긴 어려운 거 같다. 제가 미지와 미래 모두 사랑하기도 하고. 제어를 해주는 호수도 좋고, 태진은 '한번 해볼 수 있지 않나'라고 용기를 복돋고 자기 전에 '피식'할 수 있는 매력이 있어서. 그래서 행운이라 생각한다. 한 드라마를 하면서 두 명의 남자와 공식적으로 데이트를 하는 게. 다른 작품에서는 둘 중 하나와는 이뤄지지 않는 사랑을 하게 되는데, 이번엔 둘다니까. 그리고 합법적이니까. 마음을 다 줘도 괜찮아서, 그래서 두배로 좋았다.(웃음)
▲ 미지, 미래 얘기가 이끌어가는 와중에 로사의 에피소드가 등장하면서 호불호가 나뉘었다.
= 전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연이 너무 슬퍼서 대본을 보면서도 울었다. 그러다가 '이거 찍을 땐 조금 쉬나' 싶기도 했다.(웃음)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쉬진 못했다. 몽타주가 많다. 탄원서도 받아야 하고, 문도 두드리고, 이동도 많다. 할머니 집에가서 호수랑 또 들어야 하고. 그래서 '감독님 생각보다 제가 많네요'라고 했다.
▲ 대본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어떤 부분이었을까.
= 미지가 '관두지도 말고 버티지도 마. 내가 대신 해줄께'라고 하는데, 그 얘길 제가 듣고 싶었던 거 같다. 할머니에게 미래가 '나, 아무 것도 안할 거야'라고 하는데, '다들 살자고 하는 거다'고 위로하는 말도 정말 와닿았다. 저도 후회라는 걸 하지 않나. 그땐 최선이라 선택한 건데, 제가 살자고 한 최선의 선택인데, 후회하는 게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게 크게 와닿았다. 내레이션도 그렇고 정말 좋은 게 많았다. 그냥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누군가에게 별로로 보일 수 있어도 '나만 그런게 아니다'라고, '그냥 열심히 살면 된다'고 그런 얘길 해주는 거 같다.
▲ 성인이 된 후 사춘기를 겪은 거 같다.
= 맞다. 어릴 땐 사춘기 없이 말을 잘 들었다. 그런데 스무살에 집을 나갔다. 엄마랑 싸우고.(웃음) 한번도 '아니야'라고 말한 적이 없고, 거역한 적이 없었는데, 서울에 올라오고 일을 하면서 저도 예민했던 시기였고, 엄마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무살 짜리가 '나, 그래도 일하는 사람이야. 사회생활 해야해'하고 싸우고 집을 나갔다. 핸드폰도 끄고 4일 정도 버텼다. 아빠가 '없던 일로 해줄테니 사과해라'라고 해서 들어갔다. 집을 나와선 강릉으로 도망갔다. 그런데 첫날부터 너무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었다. 일단 바닷가에 앉았는데, 생각은 30분이면 정리되더라. 그런데 못가니까.(웃음) 미지가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 장면도, 엄마가 우니까 화냈던게 무너지면서 위로하지 않나. 그게 모녀 사이같다. 저도 엄마한테 뭐라하고, '내가 잘못했지'하고 생각이 정리되더라. 그런거 보면 미지에 더 가까운 거 같기도 하다.
▲ 실제로도 둘째라서 그런가.
= 저도 미래를 보며 제 친언니 같더라. 책임감도 강하고, 지나치게 이성적이다. 저는 감성적으로 받아들인데. 그래서 언니 생각이 많이 났다. 동시에 미래를 연기하는 게 많이 걱정됐다. 미래는 직장인이기도 하고. 제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직장인들이 공감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첫방송을 직장인 친구랑 같이 봤는데, 미래가 회사 생활하는 걸 보면서 'PTSD 올 거 같다'고 하더라. 저는 그때 '아, 됐다' 싶었다. 제가 걱정한 거 보다 공감할 수 있겠다 싶더라.
▲ 가족들 반응은 어떤가.
= 아빠는 제가 나온 것들을 보면서 가끔 주무신다. 그런데 이번엔 잘 집중해서 보시더라. 다들 재밌게 봐서 매일매일 가족 단톡방이 시끄럽다. 다시 보면서 '이게 좋다', '눈물 난다' 이런 얘기를 이번엔 세세하게 말해주더라.
▲ 개그맨 신동엽이 쿠팡플레이 'SNL' 출연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 아직은 용기가 없다. 제가 용기가 있고, 그 프로그램 취지에 맞는, 그 정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가 시구를 안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제대로 못할 바엔 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내려놓을 준비가 돼야 나가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자신감이 없다. 아직 쥐고 있는게 많다. 내려놓을 게 많다.(웃음)
▲ 동안의 상징이자 '뽀블리'라고 불리지만, 연기적인 확정을 원한다고 해왔다.
= 밝은 이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것도 걱정됐다. 그래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등의 작품을 한 거다. '미지의 서울'도 미지는 밝지만 아픔이 있고, 미래는 힘들고 지쳐 있다. 제 바운더리 안에서 낮은 걸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요즘은 나름대로 갈증을 채웠다 싶어서 밝은 걸 하고 싶더다. 기본적인 에너지가 내려간 거 같아서. 또 자꾸 뭔가 메시지를 드리는 거 같더라.(웃음) 그래서 가볍게 볼 수 있는 것들을 해보고 싶다. 지금 촬영하는 디즈니플러스 '골드랜드'는 제가 했던 것 중 제일 어두운 거 같다. 이걸 하게되면 꼭 밝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지금은 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은 동안, '뽀블리' 이런 말들이 너무 감사하다. 잘 유지하고 싶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