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내 공장에 미국산 장비 공급을 제한할 수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방침이 실현될 경우 생산량 저하, 공정 전환 지연 등의 피해가 일부 예상된다. 다만 이미 바이든 정부 시절부터 시행된 대중국 제재로 기업들이 대응 마련에 나선 점이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상무부 수출통제부문 책임자인 제프리 케슬러 산업·안보 담당 차관이 이번 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런 방침을 통보했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통보된 방침은 중국 현지 공장에 미국 반도체 제조 장비를 공급할 때마다 허가받지 않아도 되는 조치를 취소하는 취지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 1위 TSMC에도 같은 방침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조치는 중국 내 공장에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램리서치, KLA 등 미국 업체의 반도체 장비가 들어가는 것을 사실상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정부 들어 중국 반도체 굴기를 꺾기 위한 움직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의 인공지능(AI) 발전을 막기 위해 반도체 기업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출을 막기도 했다.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 장비인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는 이미 지난 2019년부터 중국 반입이 금지된 상태다.
업계에선 이번에 미국산 장비 반입이 제한되더라도 국내 업체들이 받는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 때부터 미국의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한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핵심 기술 공급망에서의 중국 배제를 의미) 정책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고,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 D램 공장, 충칭에 패키징 공장, 다롄에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 공장을 가동 중이다.
일각에선 미국이 방침을 유예하거나 철회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WSJ는 상무부 산업·안보국이 주도한 이번 방침이 미국 정부 내 다른 부서의 동의를 완전히 받은 상황은 아니어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으로 최종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앞서 미국 정부는 2022년 10월 미국산 장비와 미국 기술이 포함된 반도체 제품의 중국 수출 통제를 발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공장에 대해서는 그 적용을 1년간 유예한 바 있다. 다음 해 두 기업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해 방침을 사실상 무기한 유예시켰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