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의 추억[이준식의 한시 한 수]〈303〉

1 month ago 6

해마다 눈 속을 노닐며, 자주 매화 꽂고 그 향기에 취했었는데.
매화 꽃잎 손으로 산산이 부수는 심란한 마음, 옷깃에는 말간 눈물만 그득.
올핸 바다와 하늘의 끝자락에서 성긴 귀밑머리 두 가닥이 어느새 희끗희끗.
저물녘 몰아치는 바람세 보아하니, 분명 매화 구경은 어그러질 것만 같아.
(年年雪裏, 常插梅花醉. 挼盡梅花無好意, 贏得滿衣清淚.
今年海角天涯, 蕭蕭兩鬢生華. 看取晚來風勢, 故應難看梅花.)

―‘청평악(淸平樂)’ 이청조(李淸照·1081∼1141?)

삶의 부침(浮沈)에 따라 매화를 대하는 시인의 심경이 변하고 있다. 눈 속에서 매화향에 취해 노닐었던 젊은 날의 추억.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무슨 연유에서인지 매화를 봐도 도무지 흥이 돋지 않고 손으로 꽃잎 비비며 눈물만 지었던 한 시절. 그리고 지금, ‘성긴 귀밑머리 두 가닥이 어느새 희끗희끗’해진 시인은 홀로 먼 땅에 떨어진 처지에서 새삼 매화 구경에 마음 부푼다. 지난날의 일락(逸樂)을 반추하면서 스스로 위안거리를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나 오래도록 갈급(渴急)해 왔을 이 기대는 물거품이 될 듯하다. 저물녘 몰아치는 세찬 바람세에 시인의 안타까움이 짙어간다.

이 노래는 북송 몰락으로 남하한 이후 시인의 만년작. 그래서인지 더러 시인이 망국의 한을 서러워하며 남송의 운명을 ‘바람에 스러질 매화’에 견주었다고도 한다. 이렇게까지 견강부회할 필요가 있을까. 남편과의 사별, 친정과 시가 식구에 대한 반대파의 박해, 재혼과 이혼…. 그녀의 삶 자체가 풍상고초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흔하디흔한 매화의 고절(孤節)이니 운치니 하는 여유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청평악’은 곡조명.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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