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엔씨소프트가 자사 간판 게임인 '리니지2M'을 표절했다며 카카오게임즈(아키에이지 워·엑스엘게임즈)를 상대로 낸 수백억 원대 저작권 침해 소송 항소심(서울고등법원 제5-2민사부(재판장 김대현) 법원이 1심에 이어 또다시 카카오게임즈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는 "누가 봐도 화면 구성이나 과금 모델(BM)이 똑같은 '리니지 라이크(리니지 모방 게임)'인데 왜 표절이 아니냐"며 의아해하는 반응이 적지 않습니다.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두 게임을 나란히 켜두고 플레이하면 어떤 게 리니지이고 어떤 게 아키에이지 워인지 단번에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인데도 말입니다.
그럼 도대체 왜 유저들의 눈에는 명백한 표절로 보이는 현상이 법원의 잣대에서는 합법으로 판가름 나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저작권법을 관통하는 대원칙인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에 있습니다.
다른 유저의 눈과 법의 눈 … '아이디어'와 '표현'의 차이
저작권법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외부로 드러낸 '표현'만을 보호할 뿐, 그 밑바탕에 깔린 '아이디어' 자체는 보호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야구'라는 스포츠의 규칙(9회말, 3아웃 등)은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는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특정 야구 중계방송의 카메라 앵글이나 해설진의 멘트는 고유한 표현으로서 보호받습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저들이 리니지 라이크의 핵심 유사성으로 지적하는 '경험치를 잃고 복구하는 시스템', '클래스(직업)를 뽑기로 얻는 방식', '아이템을 강화하는 확률형 시스템' 등은 법적으로 보호받는 고유한 표현이라기보다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라는 장르의 규칙, 즉 '아이디어'에 해당한다고 법원은 본 것입니다. 화면의 체력 바 위치나 미니맵의 위치 역시 유저들의 편의를 위해 최적화된 인터페이스(UI)일 뿐, 창작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시각입니다.
물론 아키에이지 워를 둘러싼 유사성 논란은 컸습니다. '복사 붙여넣기' 수준으로 UI가 비슷한 점이 치명적이었습니다. 엔씨소프트는 아키에이지 워의 '직업'이 리니지2M의 '클래스'를 모방했고, 주무기와 부무기 등 2종의 무기를 혼합해 사용하는 리니지2M 고유의 시스템을 따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레벨에 따라 일반-고급-희귀-영웅-전설 등급을 지급하는 획득 방식, 같은 등급 4장을 모아 상위 등급으로 합성하는 시스템도 표절 근거로 꼽았습니다. 유저들 사이에서도 표절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들끓었고 엔씨소프트가 소송에 나서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엔씨소프트가 자신들만의 고유한 창작물이라고 주장하는 시스템들이 사실은 수많은 과거 선행 게임에서 이미 쓰여왔던 '장르적 문법'이라고 본 것입니다. 소송 과정에서 개발사 엑스엘게임즈와 카카오게임즈는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태평양과 협력해 'V4', '몬스터 길들이기', '세븐나이츠' 등 다수의 선행 게임에 리니지2M과 유사한 규칙과 시스템이 이미 존재했다는 점을 입증했습니다. MMORPG를 만들다 보면 기존의 성공한 원형을 참고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장르의 보편적 특성이라는 주장이 법정에서 통용된 순간입니다.
해외에서도 이처럼 게임의 장르적 유사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이를 미국 저작권법에서는 '표준적 해법(Scènes à faire, 씬 자 페르)' 원칙이라고 부릅니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배틀그라운드'의 개발사 펍지(PUBG)가 넷이즈('황야행동' 등)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제기했던 저작권 소송에서도 이 원칙이 핵심 쟁점이 되었습니다. '수송기에서 낙하해 무기를 파밍하고, 안전 구역이 점차 좁아지는 시스템' 등은 특정 기업이 독점할 수 없는 배틀로얄 장르의 필수 아이디어라는 방어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며 결국 양측의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장르적 문법은 특정 기업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미국 법원의 기조가 최근 게임 관련 저작권 소송에서 묵시적으로 반영된 대표적 사례입니다.
성과 도용 주장도 배척...독점권 인정시 줄소송 우려
엔씨소프트는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막대한 자본과 노력을 들여 만든 리니지2M의 성과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며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을 함께 주장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주장 역시 배척했습니다.
이 주장이 법원에서 인정될 경우 시중에 출시된 유사 장르 게임 전부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굴레를 쓰게 되는 맹점이 존재했습니다. 게임업계는 특정 장르의 게임이 출시되면 그 장르의 기본 규칙이나 요소를 차용한 유사 게임들이 뒤이어 나오며 산업 전체가 발전해 온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법원이 리니지2M의 시스템을 엔씨소프트만의 고유한 성과로 인정해 독점권을 쥐여준다면 사실상 '리니지 라이크'의 원형을 따르는 타 게임사들의 한국형 MMORPG 개발은 원천 봉쇄됩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두 게임이 완벽히 같을 수는 없으며, 아키에이지 워 역시 독자적인 원천성을 지니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재판부는 아키에이지 워에 해상전, 무역 시스템 등 고유의 콘텐츠가 확연히 존재한다는 점을 두 게임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주요 근거로 삼았습니다. 장르적 문법을 활용했을 뿐 누군가의 성과를 훔친 불법 행위로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하지만 법원의 이번 판결이 "게임사들이 흥행작을 베껴도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닙니다. 혁신 없이 기존의 성공 공식, 이른바 '리니지 라이크'에만 매몰되는 게임사들을 향한 게이머들의 싸늘한 시선과 비판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게임 업계 내 무분별한 표절 소송 남발에 확실한 제동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장르의 원형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유사성만으로는 함부로 표절의 굴레를 씌울 수 없다는 법적 기준점이 명확히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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