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일상 불편함, 기술로 해결” 다이슨, 100년 된 발전소에서 혁신적인 미래 설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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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싱가포르=박귀임 기자] "창의적 충동, 더 나은 것을 만들려는 욕구,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필요는 결코 꺼질 수 없는 마음의 상태다(The creative impulse, the desire to improve things, and the need to solve problems, are a state of mind which cannot be switched off)."

글로벌 기술 기업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이 한 말이다. 싱가포르 세인트 제임스 파워 스테이션에 위치한 다이슨 글로벌 본사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다이슨의 경영 철학 전체를 압축한 것이라고 느껴진다.

다이슨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이 한 말이 벽면에 새겨져 있다 / 출처=IT동아다이슨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이 한 말이 벽면에 새겨져 있다 / 출처=IT동아

기자는 지난 6월 다이슨 본사에서 열린 '다이슨 글로벌 미디어 데이(Dyson Global Media Day)'에 참석했다. 다이슨은 '일상의 불편함을 기술로 해결한다'는 철학 아래 이곳에서 로보틱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등 다이슨의 차세대 기술 개발을 한다. 기자도 이 과정을 직접 확인해 봤다.

굴뚝 위 다이슨

싱가포르 하버프론트, 비보시티 맞은편. 붉은 벽돌 외벽과 아치형 창문이 늘어선 건물 앞에 서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위로 향한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흰 굴뚝에 한 단어가 새겨져 있다. 'dyson(다이슨)'.

싱가포르에 위치한 다이슨 글로벌 본사 전경 / 출처=다이슨싱가포르에 위치한 다이슨 글로벌 본사 전경 / 출처=다이슨

1927년, 이 굴뚝에서는 석탄 연기가 피어올랐다. 싱가포르 최초의 화력발전소로서 항구와 주변 일대에 전기를 공급하던 시절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 국가유산위원회가 2009년 국가기념물로 지정한 이 건물을 다이슨은 2022년부터 글로벌 본사로 운영했다. 과거를 지운 것이 아니라, 그 위에 혁신을 얹었다.

야외에는 1850년대 P&O 해운사의 낡은 닻과 경계석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헤리티지 트레일 안내판이 이곳의 역사를 조용히 전한다. 100년 전 이 굴뚝이 도시에 전력을 보냈다면, 지금은 AI·로보틱스·고속 모터 등 다른 종류의 에너지가 이 건물을 채우고 있다.

싱가포르에는 약 2000명의 구성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엔지니어와 과학자다 / 출처=다이슨싱가포르에는 약 2000명의 구성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엔지니어와 과학자다 / 출처=다이슨

다이슨과 싱가포르의 인연은 2004년 모터 공장 설립부터 시작됐다. 이후 20년에 걸쳐 거점을 확대했고, 본사까지 이전했다. 다이슨에 따르면 현재 싱가포르에는 약 2000명의 구성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엔지니어와 과학자다. 이들은 제품의 혁신과 시장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늘 고민한다고 담당자는 전했다.

다이슨 디지털 모터부터 전기차까지 '역사 한눈에'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히스토리 워크가 펼쳐진다. 다이슨의 기술 역사를 연대순으로 보여주는 이 공간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다이슨이 무엇에 집중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다이슨 DC01을 시작으로 히스토리 워크가 펼쳐진다 / 출처=IT동아다이슨 DC01을 시작으로 히스토리 워크가 펼쳐진다 / 출처=IT동아

다이슨의 첫 제품인 청소기 'DC01'부터 최근 선보인 선풍기와 헤어케어 제품까지 수십여 종이 전시돼 있었다. 히스토리 워크를 차근차근 걷다 보니 다이슨의 노력과 혁신적인 기술력이 오롯이 느껴졌다.

특히 다이슨 기술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디지털 모터(Dyson Digital Motor, DDM)가 분해된 채 놓여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2004년 최초의 디지털 모터 X020은 분당 8만 8000회전을 했고, 2009년 V2는 전작의 3분의 1 크기로 줄었다. 2014년 V6는 네오디뮴 자석을 탑재해 분당 11만 회전을 가능케 한 데 이어 2016년 V9의 경우 헤어드라이어 손잡이 속에 들어가도록 설계됐다. 또 2022년 Gen5 하이퍼디미엄 모터는 13만 5000회전을 할 수 있는데, 안내판에는 'F1 엔진보다 9배 빠르다'고 적혀 있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자동차 경주인 포뮬러1(F1) 레이싱카 엔진보다 9배 빠른 회전 속도라는 의미다.

다이슨 디지털 모터 V9 / 출처=IT동아다이슨 디지털 모터 V9 / 출처=IT동아

숫자가 바뀔 때마다 모터는 작아졌고, 출력은 커졌다. 20년 이상 모터에 집중한 결과 혁신을 거듭해온 배경이 여기 있었다. 제임스 다이슨이 말하는 '창의적 충동'이 이 히스토리 워크에서는 수치로 읽혔다. 불편함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고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 그 충동이 지금의 다이슨을 만든 셈이다.

그룹 인터뷰에서 윌 커(Will Kerr) 다이슨 제품 개발 부문 총괄 부사장은 "다이슨은 단순히 '혁신을 위한 혁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를 정확히 포착하고 최선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샤리사(Sacharissa) 다이슨 뷰티 포뮬레이션 제품 개발 매니저 역시 "우리의 모든 시도는 다이슨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다이슨은 일상 속에서 간과되는 문제를 자체 기술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다이슨 전기차 / 출처=IT동아다이슨 전기차 / 출처=IT동아

한켠에는 출시되지 못한 다이슨의 전기차도 있었다. 다이슨이 수년간 개발하다 2019년 포기를 선언하며 끝내 시장에 나오지 못한 그 차였다. 본사 한복판에 실패작을 전시해 두는 기업은 흔치 않다. 5127번의 프로토타입 끝에 청소기를 완성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제임스 다이슨의 철학이 여기서도 확인 가능한 것이다. 실패를 숨기지 않고, 과정으로 보기 때문 아닐까.

18개 연구소, 차세대 기술 개발에 집중

본사에는 18개의 최첨단 연구소가 운영 중이다. 다이슨 차세대 기술이 이곳에서 개발되고 탄생한다. 다이슨은 매년 연구 개발에 4억 파운드(약 8000억 원)를 재투자하고 있다. 다이슨은 2025년 R&D에도 4억 파운드 이상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다.

래피드 프로토타이핑 랩 내부 / 출처=IT동아래피드 프로토타이핑 랩 내부 / 출처=IT동아

기자는 일부 연구소를 방문했다. 우선 래피드 프로토타이핑 랩(Rapid Prototyping Lab)은 새로운 기술의 개발 속도를 높이는 핵심 공간으로, 다양한 프로토타이핑 요구에 맞는 여러 장비를 갖추고 있다. 영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필리핀에 걸쳐 60명의 엔지니어가 프로토타이핑 팀에서 디자인·제조 엔지니어들과 협업하며 신제품 개발을 지원한다.

연구소에서의 작업은 프로토타입 제작에서 끝나지 않는다. 혁신적인 기술이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으로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에단 라이트(Ethan Wright) 다이슨 뷰티 테크니컬 리드는 그룹 인터뷰를 통해 "실제 출시 전까지 1.2m 높이에서 제품을 떨어뜨리거나, 기기 내부로 다량의 먼지를 강제 흡입시키는 등 다양한 내구성·신뢰성 테스트가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어쿠스틱 랩에서는 1만 번 이상 테스트가 진행되기도 한다 / 출처=IT동아어쿠스틱 랩에서는 1만 번 이상 테스트가 진행되기도 한다 / 출처=IT동아

특히 어쿠스틱 랩(Acoustic lab)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는 제품이 내는 소리를 측정하고 다듬는다. 흡입력은 높이고 소음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만큼 1만 번 이상 테스트하기도 한다고 담당자는 설명했다. 실제로 어쿠스틱 테스트 챔버에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외부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공간. 이 정도의 정적은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웠다.

청소기 흡입력을 높이면서 소음은 줄이는 것, 헤어드라이어가 강한 바람을 내면서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 다이슨이 '일상의 불편함'으로 정의하는 영역은 성능 수치를 넘어 감각의 영역까지 닿아 있었다. 그 감각을 다루는 공간이 바로 이 챔버였다.

로보틱스 관련 연구소도 차례로 살펴봤다. 로보틱스 리서치 랩(Robotics research lab)은 기술을 만드는 곳으로 머신러닝, 로보틱스, AI 등을 연구하고 테스트하는 공간이었다. 로보틱스 디자인 스튜디오(Robotics design studio)의 경우 기술에 형태를 입힌다. 한쪽에서는 로봇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연구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보안이 엄격하게 적용됐다.

특별한 공간에서 시작되는 혁신

다이슨 내부에 층과 층을 잇는 나선형 계단 / 출처=다이슨다이슨 내부에 층과 층을 잇는 나선형 계단 / 출처=다이슨

본사는 발전소를 리모델링한 만큼 일반적인 사무 공간과도 거리가 멀다. 열린 구조는 물론 층과 층을 잇는 나선형 계단, 자유롭게 이동하며 토론하는 구성원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다이슨 제품의 인기가 높다. 이에 다이슨도 한국 시장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2024년에는 슈퍼소닉 뉴럴을, 2025년에는 에어랩 코안다2x를 각각 한국에서 가장 먼저 출시한 바 있다. 2026년 에어랩 코안다2x 업그레이드 버전 역시 마찬가지다.

윌 커 다이슨 제품 개발 부문 총괄 부사장 / 출처=다이슨윌 커 다이슨 제품 개발 부문 총괄 부사장 / 출처=다이슨

윌 커 총괄 부사장은 "한국은 특히 헤어케어와 뷰티 카테고리에서 제품을 가장 먼저 선보여 온 시장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굉장히 구체적인 요청과 높은 기대 수준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적극적으로 경청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사샤리사 매니저도 "헤어 케어 기기나 에센셜 케어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다양한 국가와 다양한 모발 유형을 아우르는 테스트를 거치고 있다. 그 중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항상 필수적인 테스트를 거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의 목소리가 제품 개발에 반영되는 것. 그 시작은 결국 다이슨 연구소에서다. 다이슨이 강조하는 혁신은 구호가 아니었다. 래피드 프로토타이핑 랩에서는 아이디어가 실물로 바뀌는 속도를 높이고, 어쿠스틱 챔버에서는 소리 하나를 다듬기 위해 완벽한 정적을 만들어낸다. 로보틱스 리서치 랩과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기술과 형태가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진화한다.

다이슨 제품이 전시돼 있는 공간 / 출처=IT동아다이슨 제품이 전시돼 있는 공간 / 출처=IT동아

본사를 방문한 후에 비로소 이해됐다. 다이슨의 제품이 왜 혁신적이라고 평가받는지, 그리고 그 성능이 어디서 나오는지 말이다. 본사 벽에 새겨진 제임스 다이슨의 문장처럼, 이 공간 전체가 꺼지지 않는 상태로 작동하고 있었다.

다이슨의 사명은 분명하다. 과학, 공학, 기술을 통해 일상 속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집안 청소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부터 공기를 정화하는 방식의 발전, 그리고 뷰티 분야의 혁신에 이르기까지 다이슨 엔지니어들은 끊임없이 혁신의 한계를 넓혀가고 있다.

끊임없이 혁신의 한계를 넓혀가고 있는 다이슨 / 출처=다이슨끊임없이 혁신의 한계를 넓혀가고 있는 다이슨 / 출처=다이슨

다음 혁신이 어디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이 이 건물 어딘가에서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IT동아 박귀임 기자(luckyim@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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