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6월 22일 오전 11시 1분 한국경제신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프리미엄9'에 게재됐습니다.
피지컬 인공지능(AI)을 강화하고 있는 크래프톤이 이번엔 AI 반도체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 게임회사가 반도체 회사에 직접 투자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크래프톤이 AI 모델(라온)부터 추론 반도체까지 직접 확보하는 광폭 행보를 통해 게임회사에서 AI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하이퍼엑셀에 500억 투자
2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인 하이퍼엑셀이 진행 중인 시리즈B 라운드에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한다. 투자액은 500억원 안팎으로, 전체 조달액(1500억원)의 3분의 1을 책임진다.
하이퍼엑셀은 2023년 김주영 KAIST 교수가 설립한 AI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으로, 대규모언어모델(LLM) 추론용 AI 반도체 언어처리장치(LPU)를 개발한다. 네이버클라우드, LG전자 등과 공동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용 인프라 및 가전·로봇 온디바이스 AI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2024년 말 55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받은 데 이어 1년6개월 만에 대형 후속 투자 유치에 나섰다. 당시 기업가치는 2000억원 이상으로 평가됐다.
게임사가 AI 반도체 회사에 대규모 자금을 넣는 건 이례적이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AI 퍼스트’를 선언한 뒤 1000억원 규모의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실시간 상호작용이 가능한 AI 캐릭터와 맞춤형 콘텐츠 생성을 실험하고 있다. 이 같은 경험을 통해 AI가 게임산업의 비용을 크게 높인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반복형 조종불가능캐릭터(NPC)와 달리 유저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AI 에이전트는 천문학적인 연산 인프라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다. 개발 단계에서 코드 생성, 이미지 제작, 품질 검수 등으로 AI 활용 범위를 넓힐수록 추론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AI 캐릭터를 기술 시연으로 보여주는 것과 수백만 명에게 상용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결국 추론 비용을 낮추는 기술이 게임사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이퍼엑셀의 LPU는 이런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기술로 꼽힌다. 현재 글로벌 AI 인프라 시장을 독점 중인 엔비디아의 칩이 개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며 품귀 현상마저 빚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범용 GPU와 달리 LLM 추론 연산에 특화했고, 구하기 힘든 고대역폭메모리(HBM) 대신 저전력D램(LPDDR)을 사용해 가격과 전력 소모를 낮춘다. 크래프톤이 엔비디아 등 글로벌 AI 생태계와 협력하면서도 하이퍼엑셀에 전략 투자를 단행한 이유다. 이렇게 하면 장기적으로 GPU 의존을 덜어내면서도 독자적인 원가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 피지컬 AI에서도 유리
크래프톤은 피지컬 AI 시장에서도 이미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히트 게임인 배틀그라운드를 기반으로 피지컬 AI의 물리적 학습을 가상공간인 게임에서 시행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방위산업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 3월 크래프톤에 먼저 손을 내밀어 피지컬 AI를 공동 개발하는 합작법인(JV)을 설립하자고 제안한 배경이다.
무인 시스템이나 제조 장비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피지컬 AI에서도 반도체가 중요해지고 있다. 전력 소모와 발열을 줄이면서도 빠르게 추론할 수 있는 저전력·저지연 반도체가 필수로 자리잡고 있어서다. 크래프톤의 하이퍼엑셀 투자가 피지컬 AI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루도로보틱스를 설립해 휴머노이드 로봇의 ‘두뇌’ 개발에 착수했다. 게임 속 가상 캐릭터를 움직이는 AI 기술을 현실 세계의 로봇 지능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업계에선 크래프톤이 AI 하드웨어 인프라까지 통제하는 ‘종합 테크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게임회사가 AI칩 등 하드웨어 영역까지 밸류체인을 수직 계열화한 사례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드물다”며 “AI를 이해한 장기 전략을 세우고 차근차근 풀어가는 회사같다”고 말했다.
안정훈/최다은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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