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전쟁 ‘불의 7일’로 문명이 붕괴된 지구는 곰팡이의 포자가 날아다니는 숲 ‘부해(腐海)’로 뒤덮인다. 마스크 없이는 5분도 못 버티는 부해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거대한 곤충 오무. 인류는 생존의 사투를 벌인다. 최근 재개봉한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이 싸움을 불과 바람(그리고 물)의 대결로 그린 작품이다. 군사제국 토르메키아는 ‘불의 7일간’을 초래했던 병기 ‘거신병’을 부활시키려 한다. 생존을 위해 거신병으로 부해와 오무를 모조리 태워 버리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그에 맞서는 특별한 소녀 나우시카는 부해를 이해하고 오무와 소통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꾀한다.
나우시카는 어린 시절 자신이 지키려 했던 오무의 유충을 어른들에게 빼앗긴 기억이 있다. 당시 어른들은 말했다. “이리 줘, 나우시카. 곤충과 인간은 한 세상에 살 수 없어.” 하지만 나우시카는 그 공존이 불가한 이유가 곤충이 아닌 인간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부해는 사실 오염된 지구를 되살리려는 숲의 자정작용이었고, 오무는 그 숲을 지키는 존재였다. 불을 쓰게 된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공존의 길을 저버린 반면, 물과 바람을 쓰는 자연은 그 망가진 세계를 회복하려 애쓰고 있었다.
포로로 잡힌 바람계곡의 주민이 토르메키아인들에게 하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당신은 불을 쓰지. 우리도 조금은 쓰지만 지나치게 쓰면 아무것도 안 남아. 불은 숲을 하루에 재로 만들지. 물과 바람은 백 년 걸려서 그 숲을 키웠는데 말이야. 우린 물과 바람이 더 좋아.”러브버그의 계절이 또 돌아왔다. 물론 보는 것만으로도 질색하게 만들지만, 이들이 갑자기 찾아온 이유와 그 공존의 길을 ‘러브’의 시선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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