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종이 있다면 좋을 텐데
비밀을 말하고 싶을 때 띵동,
문이 열리면
들어갔다 나왔다 가벼워질 텐데
다음에 다시 와야지
하염없이 서 있을 필요가 없을 텐데
그 애가 띵동,
내 마음의 초인종을 누른다면
한 번은 문을 열고
한 번은 문을 열지 않을 텐데
아니면 내가 가서 띵동,우리 둘이라면
불안의 접시 위에 담긴 비밀을 나눠 먹고
접시쯤이야 쉬이 깨트릴 수 있을 텐데
(하략)
―김현(1980∼ )
비밀을 전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비밀의 앞과 뒤에서 두려워하고 망설인다. 혹은 기다리거나 숨는다. 비밀은 때에 따라 즐거움이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기쁨, 슬픔, 환희, 고통이 될 수 있다. 하물며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비밀’이라면 아름답고 무시무시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비밀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건 비밀을 주고받는 자들의 마음 상태일지도 모른다.
시인 김현은 마음의 초인종을 상상한다. “비밀을 말하고 싶을 때 띵동” 벨을 누르고, 상대가 기척을 하고, 곧 당신의 비밀이 이쪽으로 건너올 것을 짐작하고, 이 모든 것을 준비할 수 있는 초인종이 있다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그렇게 되면 “문이 열리지 않아도/다음에 다시 와야지” 하고 돌아갈 수 있겠다. 누군가는 “하염없이 서 있을 필요가” 없고, 누군가는 “불안의 접시 위에 담긴 비밀”을 함께 나눠 먹은 뒤 ‘불안’ 따위에서는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달콤한 상상 뒤 입맛이 쓴 건 우리 마음에는 초인종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니 손톱을 깨물며 오늘도 고민할 수밖에. 당신에게 내 비밀을 전해도 나, 당신, 세계는 안전하겠습니까?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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