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는 가정-교제폭력 ‘관계성 범죄’ 급증
경찰 미흡한 대응 등 불신 커 신고 꺼리지만
보호조치 확대 중, 신고해야 폭력 위험 줄어
이웃 관심과 예산 지원 병행돼야만 효과 내
관계성 범죄는 대응이 쉽지 않다. 우선 피해자가 제때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에게 “위험하다 싶으면 맞기 전에 자리를 피하라. 112나 1366(여성긴급전화)에 신고하라”고 당부하지만, 막상 내가 현관문이 닫힌 집 안에서 남편에게 맞다가 휴대전화를 찾아 제대로 번호를 누르고 조리 있게 도움을 요청하기는 매우 어렵다. 가해자들이 처음부터 피해자의 휴대전화부터 빼앗거나 집어던져 망가뜨리거나, 피해자를 집이나 차 안에 가둬놓고 나가지 못하게 해서 신고 자체를 방해하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아예 신고를 포기하는 피해자들이 있다. 그러나 가정폭력이나 교제폭력을 당하면, 나중에라도 신고해야 한다. 바로 신고하지 못했다고 해서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관계성 범죄는 증거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당장 집 안에서 두들겨 맞으면서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고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물증이 없거나 당장 신고하지 못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잘 생각하고 정리한 다음 신고해도 된다. 다쳤다면 병원에 가고, 의사에게 “가족에게, 애인에게 맞았다”고 꼭 알려야 한다. 집안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에 넘어져서 다쳤다는 둥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피해자들에게는 가정폭력이나 교제폭력을 경찰에 신고해도 충분히 보호받기는커녕 오히려 가해자에게 더 심한 폭력의 핑계를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이 불신은 실제 피해자 보호에 실패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강화된다. 우리나라의 연간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조치 건수는 작년에 9만 건을 넘어섰다. 보호조치가 적절치 못했거나 스마트워치 같은 보호조치를 했는데도 추가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도 있다. 수사관의 대응이나 보호조치가 천차만별이기도 하다. 현장에 출동한 수사관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예방할 수 있는 범죄가 발생하거나, 피해자가 수사기관을 더 불신하게 되기도 한다.그러나 가해자를 집에서 퇴거시키거나 접근을 금지시키는 피해자 보호조치가 점점 더 적극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쉼터의 수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지만, 옛날처럼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내 집이니 네가 나가라”고 떵떵거리며 소리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가능한 조치들이 있으니 두려움으로 포기하지 말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점을 믿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나를 보호해 달라고 수사기관과 지원기관에 요구하기를 바란다.
주변인들의 주의와 관심도 필요하다. 남들이 집 안에서 어떻게 지지고 볶든 알 바 아니라고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범죄를 인식하거나 걱정해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시민도 분명 적지 않다. 특히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는 소리와 움직임이 어느 정도 전달돼 실제로 생각보다 많은 사건이 이웃의 신고로 밝혀진다. 범죄라는 의심이 들면 신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오지랖이 아니라 시민정신이다. 당장 피해자의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도 내가 신고한 덕분에 피해자가 보호받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뒷받침되고, 가해자가 더 엄벌 받을 수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명절마다 관계성 범죄가 급증한다는 점은 이미 통계로 확인되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이 편성된 적은 없다고 한다. 예산 없는 대책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관계성 폭력이 사소한 일로 취급을 받지 않도록, 관계성 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의 우선순위가 높아지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신고한다고 해결이 되겠느냐”라고 의구심을 갖는 피해자에게, 솔직히 아직은 100%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신고하지 않으면 신고했을 때보다 반드시 더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용기를 내자.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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