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묶여 현금 부족한 은퇴 생활자들
美는 주식-채권 등 금융자산으로 주로 생활
연금의 투자 선택권이 자산 구조 차이 낳아
길어진 노후 연금 운용과 세제 재설계할 때
미국의 풍경은 다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22년 발표한 ‘소비자금융조사(Survey of Consumer Finances)’에 따르면 65∼74세 미국 가구의 금융자산 비중은 약 56%이고, 부동산은 32%에 머문다. 이 연령대의 평균 순자산은 약 178만 달러(약 26억 원)로, 그 절반 이상이 주식 채권 펀드 등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자산이다. 미국 은퇴자 상당수가 배당, 이자, 연금계좌 인출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근거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자산 비중의 구조 차이다. 한국 은퇴 연령대의 금융자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의 경우 국민연금공단에 그 운용을 전적으로 맡긴다. 가입자가 매달 납부하는 동안에도 자기 돈이 주식과 채권 중 어디에, 얼마의 비중으로 투자되는지 알지 못한다. 운용 수익률이 높아도 개인 수령액이 직접 오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 전체의 장기 지급 능력 강화라는 간접 반영으로 끝난다.
반면 미국의 기업퇴직연금인 401K와 개인퇴직계좌인 IRA 가입자는 주식형과 채권형 펀드의 비중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수익률을 직접 만들어 간다. 미국 투자회사협회(ICI)에 따르면 2023년 기준 401K 가입 근로자는 평균 급여의 7∼8%를 납입하고, 기업이 3∼5%를 추가 매칭한다. 결과적으로 월급의 10∼13%가 매달 자본시장에 자동 유입되는 구조다. 그리고 총 납입 한도는 기업 매칭을 포함해 총 6만9000달러로, 개인의 최대 납부 한도는 2만3000달러다. 50세 이상의 한도는 3만500달러까지 올라간다. 기업 매칭으로 최대치를 지급하는 기업은 흔치 않다. 그럼에도 개인의 납부 한도는 한국과 비교해 상당한 수준이다.물론 여기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점은 개인에게 자산 비중 선택권을 주는 방식이 만능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금융 지식이 부족한 개인이 잘못된 판단으로 노후 자산을 잃을 수 있고, 그 실패가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될 수도 있다. 따라서 공적연금의 집단적 안정성을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선택권 제로’ 구조가 최선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물론 우리의 퇴직연금인 IRP는 개인에게 선택권을 부여해 상품을 직접 운용할 수 있다. 그러나 2023년 연금 통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자 중 퇴직연금 가입 비중은 약 35%에 불과하다. 자기 책임형 수익 구조로 넘어온 이들이 아직은 소수라는 뜻이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첫째, 국민연금 안에서 일부만이라도 자기 책임형 운용을 허용할 순 없을까. 예를 들어 코스피200이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처럼 이미 위험을 분산시킨 지수 추종 펀드로 선택지를 좁혀 연금 자산의 일부만이라도 개인이 직접 결정하게 하는 방식이다. S&P500은 수십 년간 연평균 약 1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전부를 개인에게 맡기자는 것이 아니다. 검증된 지수 상품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만큼은 개인이 자신의 노후 수익률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검토해야 한다.
둘째, IRP 가입을 유도하기 위한 현 세제 설계는 괜찮은가. 우리의 IRP와 유사한 미국의 IRA는 연간 7000달러 납입액 전액이 소득공제 대상이다. 반면 한국의 IRP는 연간 900만 원 한도에 세액공제율 13.2∼16.5%를 적용해 실질 혜택이 120만∼150만 원 수준에 머문다. 두 나라의 설계 방식이 다른 만큼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고, 각각의 장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납입액 전부를 과세소득에서 빼주는 방식과 일부에 공제율을 곱한 만큼만 돌려주는 방식 간 차이가 개인의 장기 투자 의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한 번쯤 진지하게 짚어볼 만하다. 길어진 수명에 대비하기 위해 국민 개개인은 지금보다 더 여유로운 금융 노후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제도와 세제의 설계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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