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칼럼] 주택공급 속도는 왜 이리 더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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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윤 칼럼] 주택공급 속도는 왜 이리 더딜까

주택 시장에서 수요자는 집을 사려는 사람이다. 공급자는 조금 다르다. 집을 지어 파는 건설회사나 시행사가 공급자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를 공급자로 본다. 택지 조성과 용도 지정, 인허가 등 주택 공급과 관련된 일을 정부가 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 가구(착공 기준)를 공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급등한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서다. 서울 용산과 경기 과천 등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고, 수도권 공공택지를 조기 조성하기로 했다.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영끌’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정부는 주택 시장에서 ‘규제자’이기도 하다. 금융당국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돈줄을 죈다. 서울 강남 등 고가 주택의 대출 금액을 꽉 묶어놓았다. ‘갭 투자’를 차단하기 위해 전세대출도 막았다. 금융당국의 이런 규제는 주택 수요를 누르는 정책이다. 공급을 건드리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주택 공급 속도를 떨어뜨리거나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재건축을 위해 낡은 집을 철거하려면 먼저 이사를 가야 한다. 은행에서 이주비를 빌려야 하는데, 주택담보대출 규제의 불똥이 튀었다. 70%(담보인정비율·LTV)까지 허용했던 주택담보대출을 40%로 확 낮춘 금융당국 규제 대상에 이주비 대출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주비로 빌릴 수 있는 최대 금액도 6억원으로 줄었다. 2주택 이상 가진 사람은 대출이 아예 안 된다.

이런 규제는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부 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서울은 주택 공급량의 80%가량이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에서 나온다. 정비사업장 43곳 중 39곳, 3만1000여 가구가 이주비 대출 규제 강화 때문에 이사를 가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사업 초기 단계에 있는 단지들도 재건축 여부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주비 문제는 ‘넓혀 놓은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생긴 병목’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차선이 확 좁아지는 병목에서 사람들은 옴짝달싹 못하도록 묶인 것 같은 답답함과 무기력함을 느낀다. ‘정부가 진심으로 주택 공급 확대에 나서진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행정 절차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1기 신도시 ‘선도지구 통합 재건축’ 모두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정부가 정말로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면 이주비 대출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우려되는 또 다른 병목은 공사비 급등이다. 올해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터지면서 원유와 석유화학 관련 제품 가격이 많이 올랐다. 아스콘과 레미콘 혼화제, 단열재 등 주요 자재값이 30~40% 급등했다.

건설 공사비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큰 충격을 받았다. 글로벌 물류망이 붕괴돼 수입 원자재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오지 못해 인력난이 심각해졌다. 레미콘값도 급등했다. 2020년 이후 4년여 만에 건설 공사비가 30% 넘게 올랐다. 건설사와 조합 간 공사비 다툼이 커졌고 많은 사업장이 공사를 중단했다.

올해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건설사와 조합은 공사비 인상폭을 놓고 다투고, 조합원들은 지도부를 의심하고, 사분오열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사태가 잇따를 수 있다.

중동전쟁 쇼크로 인한 원자재값 급등은 시장에서 생긴 가격 변동이다. 정부가 직접 책임질 일이 아니다. 이게 공사를 지연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부가 해법을 찾아야 한다.

결국 정부는 공급자뿐만 아니라 시장 조성자, 중재자 역할도 해야 한다. 한국부동산원 등 산하기관을 활용하고 지방자치단체와 충분히 협의하면 공사비 갈등으로 건설 현장이 멈춰서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재건축 분담금이 급증하지 않도록 심의 기간을 최소화하거나, 조합원 분양면적을 줄이거나, 편의시설을 간소화하도록 유도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소소해 보이지만 체감 효과가 큰 이런 일들이 시장 심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이겨야 주택 공급이 제 속도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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