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vs 0.05%. 최근 금융위원회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으로 지목된 중복 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하며 제시한 수치다. 한국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된 중복 상장사의 비중이 10%를 훌쩍 넘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가 중복 상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건 자회사 상장 과정에서 모회사의 지분 가치가 희석될 소지가 커서다. 시장에서 두 회사의 가치를 중복으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모회사의 기업 가치가 저평가되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모회사 주주에게 돌아간다는 논리다.
'공공의 적'이 된 중복상장
유독 한국에 중복 상장 기업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대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독려했다. 이 과정에서 사내 사업부를 100% 자회사로 분리하는 ‘물적분할’ 제도가 도입됐다. 당시 일부 기업이 이 제도를 이용해 알짜 사업부를 떼어내 새로운 상장사를 세우는 방식으로 그룹의 몸집을 불렸다. 이런 ‘쪼개기 상장’ 관행은 ‘중복 상장=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고착화했다.
하지만 중복 상장이 역기능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2000년대 이후 2차전지,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같은 신사업이 한국 경제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자회사 상장이 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국 산업의 근간은 제조업이다. 사업 초기부터 수조원 단위의 설비 투자와 긴 호흡의 연구개발(R&D)이 요구된다. 매출과 이익 발생 시점이 불투명한 신사업 단계에서 은행 대출을 받거나 회사채를 발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주회사 체제에서 비교적 낮은 금융비용으로 대규모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카드가 자회사 상장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신산업 투자 길은 열어줘야
미국에 중복 상장 사례가 드문 것도 산업 구조 차이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산업 생태계의 주축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소프트웨어·플랫폼 기업이다. 이런 기업들은 연구실과 인력만 있으면 신사업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 주주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중복 상장에 나설 이유가 없다. 미국이 차등의결권을 허용한다는 점도 중요한 차이다. 경영권이 보장되는 환경인 만큼 벤처캐피털 투자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데 지배주주의 부담이 훨씬 작다.
비상장 자회사의 증자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지주회사의 지분율 유지 의무라는 현실적 벽이 너무 높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비상장 자회사 지분을 40% 이상 유지해야 한다. 자회사가 증자할 때마다 지주회사도 동일한 비율로 참여해야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 사용료와 배당이 주 수익원인 지주회사가 신사업 증자에 모두 참여하는 것은 재무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국민이 대기업에 바라는 것은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해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적 부를 키우는 것이다. 역량 있는 대기업이라고 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신사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회사를 상장할 경우 중복 상장의 예외를 인정하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투자자 보호와 신산업 육성이라는 ‘두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정책 운용의 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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