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원호]바람에는 국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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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애니 ‘바람이 분다’가 던진 불편한 질문 지로의 꿈 이해하면 역사 배반하는 걸까 친일-반일 논쟁 사이 잊혀져 온 삶의 진실 개인들의 고통과 욕망에는 국적이 없다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비행기를 사랑하고 전쟁은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하늘을 향하는 꿈인 동시에, 전투기가 남긴 살육과 폐허이기도 하다. 이 불편한 조합에서 태어난 영화가 ‘바람이 분다’이다.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는 눈이 나빠 조종사가 될 수 없자 설계자가 된다. 꿈속 비행기는 구름 위를 고래처럼 미끄러지고 날개의 곡선은 눈부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의 가장 큰 고객, 아니 주인은 국가였다. 국가는 지로의 연필을 빼앗지 않았다. 그 대신 설계실과 월급, 명확한 주문을 주었다. 더 빠르고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 지로의 꿈은 그렇게 일본 제국의 표식을 달고 전쟁터로 향한다. 2013년 한국 개봉 때 군국주의 미화 논란이 일었던 것은 당연하다. 화면은 너무 아름답지만 우리는 그 비행기들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기 때문이다. 영화는 지로의 꿈과 좌절을 응시하면서도, 그 날개 아래 죽어간 조선인 등 바깥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모든 것을 용서할 수는 없으며, 아름다운 침묵 역시 침묵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아름답다고 말하면 우리는 역사를 배반하는 것일까. 지로를 이해하는 일이 제국주의를 용서하는 일이며, 역사를 기억하려면 그의 비행기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서는 안 되는가.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그 한계를 비판하고, 지로를 이해하면서 그의 꿈을 전쟁에 소진한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서사를 부여하는 것은 면죄부가 아니라 오히려 한 사람의 선택과 책임을 더 정확히 묻는 일이다. 물론 국가는 도처에, 지로의 설계도와 승진, 연구비와 방정식 속에 숨어 있었다. 그의 창조물은 국가의 무기였고, 그 아래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항상 드리웠다. 개인의 꿈은 결백해도 그 꿈이 세상에서 하는 일까지 결백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국가주의란 이런 개인의 꿈과 국가의 목적이 처음부터 같았다고 믿게 만드는 세련된 기술인지도 모른다. 피해자였던 한국의 역설도 여기에 있다. 식민지배에 맞선 반일은 해방의 힘이었고, 해방 뒤 극일은 우리 발전의 동력이었다. 한때 일본 문화와 안보 협력까지 친일로 판정하면서, 반일은 해방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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