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주가 변동 키우고 형평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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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주가 변동 키우고 형평성 논란

첨단 전자 부품을 제조하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자화전자. 지난 14일 오전 10시가 되자 이 회사 주가가 갑자기 7%가량 급등했다. 작년 영업이익이 455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는 실적 공시가 배경으로 꼽혔다. 매출도 1년 만에 3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닥 상장사인 의류업체 폰드그룹의 주가 흐름도 비슷했다. 같은 시간 실적 공시 직후 1~2분 만에 약 20% 뛰었다가 보합세로 마감했다. 사업 다각화 덕분에 작년 4분기 이익이 전 분기 대비 2.7배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확한 공시 시간을 꿰고 있던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 간 희비가 크게 엇갈린 건 불문가지다. 주가가 뛴 후에야 원인을 찾아 나선 개인투자자가 많았다.

코스피 100대 기업인 대형 상장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A건설은 지난달 22일 오후 1시 역대 최대 매출 실적을 공시했다. 시가총액이 4조원에 육박하는 이 회사 주가는 당일 9% 넘게 올랐다.

국내 상장회사 2626곳 중 상당수는 개장 전이나 폐장 후에 재무 실적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장중 공시하는 곳도 적지 않다. 14일만 해도 브이엠 루미르 원준 일신바이오 골드앤에스 유티아이 등 수십 곳이 정규 시간 내 실적을 게시했다. 한국거래소 규정상 ‘주요 공시는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해야 한다’고만 돼 있어서다. 상장기업들이 알아서 공시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좋은 실적은 장중에, 나쁜 실적은 장 마감 후 발표하는 기업이 많은 이유다. 상장사가 장중 공시를 냈다면 호재일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세계 투자자가 몰리고 있는 미국 뉴욕증시는 다르다. 필자가 뉴욕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020~2023년 장중에 실적을 발표하는 기업을 보지 못했다. 개장 전 프리마켓이나 폐장 후 애프터마켓 때 공시하는 게 당연시됐다. 금융회사는 개장 전, 빅테크는 폐장과 동시에 실적을 내놓고 가이던스를 제시하는 관행이 있을 뿐이다.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뉴욕증권거래소, 나스닥 역시 엄격한 공시 규정을 도입한 건 아니다. 다만 중요 공시는 정규 거래 시간을 피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중대한 정보는 모든 투자자가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적절한 방식과 시점에 공개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통해서다.

뉴욕증시에서 장중 실적 공시가 사라진 건 ‘정보의 비대칭’ 우려 때문이다. 전문 투자자와 개인 간 정보 접근성에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논리다. 개인은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이 뒤처지기 마련이다.

장중 공시가 주가 급변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투자자들이 차분하게 실적을 분석하고 대응할 시간을 갖기 어려워서다. 이런 환경에선 불공정 거래가 발생하기 쉽다. 정보를 미리 취득한 누군가는 호재성 공시가 나기 전 주식을 매수했다가 공시 직후 손쉽게 ‘물량 털기’에 나설 수 있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의 요즘 화두는 ‘국장’의 신뢰 회복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좀비 기업의 퇴출 절차를 간소화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실적 공시에 대한 명확한 원칙을 세운다면 미국 증시로 빠져나간 개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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