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현장 지키는 ‘일타 강사’ 윤혜정 선생님
초등 단계부터 닦은 기본기가 중요… 국어, 개념 잡으면 작품 분석 쉬워져
학생들 바뀌어가는 모습에 사명감… 자기주도 아닌 ‘엄마주도 학습’ 바꿔야
외래어-신조어 홍수가 우리말 훼손… 영어 중요하지만 우리말 잘 지켜야
‘국어의 신’으로 불리는 윤 교사는 19년째 EBS에서 방송 강의를 하며 얼굴을 알린 일타 강사다. 사교육 업체들로부터 거액의 연봉 조건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교육계 셀럽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제안을 모두 마다하고 꿋꿋하게 교단을 지키고 있다.》
윤 교사는 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엄마주도 학습이 아니라 자기주도 학습으로 기본기부터 다지도록 학교에서 돕고 싶다”고 했다. 22년째 가르치고 있는 국어에 대해 “개념만 제대로 잡으면 혼자서도 독해력과 작품 분석력을 키울 수 있다”는 공부 방법을 강조했다. 쏟아지는 신조어와 외래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말을 지켜야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수십억 원대 연봉을 거절한 ‘공교육 지킴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지는 않나.“왜 사교육 시장으로 옮겨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지금까지 정말로 많이 받았다. 심지어 반 아이들도 왜 사교육 쪽으로 안 가느냐고 묻는다. 거기엔 꼭 수십억 원대 연봉 같은 이야기가 덧붙는다. 교사의 다음 단계가 사교육 강사라고 보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씁쓸했다. 나는 이미 19년째 EBS 강의를 하고 있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이 상태로도 행복하고, 지금도 이미 너무 힘들고 바쁘다. 아이들이 내 강의를 돈을 내고 듣는다는 것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연봉과는 별개로 공교육 붕괴 등의 이유로 교단을 떠나는 교사들도 많은데….
“주변에서 ‘학교에 남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진짜 많이 듣는다.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학생들도 그런 말을 해준다. 나한테서 국어를 배우고 대학을 가서 교사가 되어 돌아온 제자들도 생겼는데, 얘들한테서 ‘롤모델’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나라도 지금의 이 자리를 잘 지켜야 되지 않나 하는 마음의 부담감이 생겼다.”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일까.“사교육이 필요한 아이들도 분명히 있다. 사교육 쪽으로 옮겨 간 교사들 또한 아이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긴다. 사교육을 악마화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학교의 교사는 아이들의 학습 태도뿐 아니라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을 가르쳐줘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그게 정말로 부족하다. 교무실에 들어와서 자기 볼일이 끝나면 인사도 안 하고 나가버리는 학생, 팔짱 끼고 선생님한테 따지며 말을 함부로 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게 문제인지 인식조차 못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다.”
―공교육의 붕괴 원인으로 일선 교사들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의하지 않는다. 학교 교사들은 정말로 치열한 임용 과정을 거쳐서 온다. EBS 강의를 함께 하는 다른 선생님들도 보면 정말 훌륭하다. 학생들의 학습 편차는 매우 크고, 공부 의욕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는 아이들이 섞여 있다. 지난해 2학년 담임을 하면서 이런 아이들을 그룹별로 나눠 공부 계획을 같이 세우고 매일 체크했다. 아이들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게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있은 지 2년이 지났다. 거리로 나섰던 교사들이 토로한 문제들을 어떻게 보나.
“교사들이 정말 힘든 상황인 건 맞다. 아이들이 선생님한테 폭언이나 폭행을 하기도 한다. 학습 지도뿐만이 아니라 생활지도하는 게 조심스럽고 어려운 시대다. 제 주변에도 학생 문제로 밤에 집에 가는 길이 무서워지고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는 분들이 있었다. 현장 교사들은 프로그램 기획부터 행사 진행, 물품 구입에 정산 보고서 작성 같은 행정 업무도 같이 해야 한다. 어떤 때는 10원 단위가 안 맞아서 머리를 싸매기도 한다.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모자라서 남은 업무를 집에서 밤늦게까지 해야 한다. 수업만 하라고 하면 정말로 더 많은 것들을 준비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없어서 안타깝다.”―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학생들도 힘들어 보이긴 마찬가지다.
“많은 학생들이 자기주도 학습이 아니라 엄마주도 학습을 하고 있다. 엄마표라는 건 참 좋은 거지만 방향이 잘못되면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모르게 된다. 설명회를 해보면 예전에는 학생 본인이 직접 왔는데 이제는 엄마들이 학원 간 자녀를 대신해서 온다. 엄마들이 들은 이야기를 집에 가서 전달하면 그게 애들한테는 잔소리가 되고 스트레스가 된다. 공부는 올바른 방법으로, 내가 해야 될 시간의 분량을 채워서 하면 점수가 나오게 돼 있다.”
윤 씨 본인은 제대로 된 입시 공부를 시작한 게 고2 때였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입시 준비보다는 동아리 등 다양한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학생이었지만, 보고 싶은 책만큼은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 같은 만화를 포함해서 한껏 많이 읽었다. 국어교사로 교단에 선 뒤에는 수업을 위해 “교과서를 빨래 짜듯이 남김없이 비틀어짜서 개념부터 다 털어냈다”고 했다. 품사에서 시작해 여러 국어의 개념들을 재배열하며 공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저서 ‘개념의 나비효과’ 교재는 133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국어에 개념이 있다니 생소하다.
“수학이나 영어, 사회 같은 과목들과 달리 국어는 시험 범위가 특정되지 않는다. 당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니 무작정 문제집을 사서 풀거나 시나 고대 가요부터 외우는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다. 소설에는 주제, 구성, 문제가 있고 인물, 사건, 배경이 중요하다. 이런 개념을 알고 공부하면 처음 보는 지문이나 장면을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선생님이 밑줄 그으면서 해석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개념을 잘 잡으면 나비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고전 작품을 하나씩 정리하면 수십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개념 강의는 딱 2시간짜리다.”
―그래도 국어 문법은 품사니 어미니 용어만으로 어렵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킬러 문항’ 논란으로 학생들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
“기본기가 중요하다. 내신이랑 수능도 사실 개념은 다르지 않다. 교사들에게 가장 큰 사고는 등급을 못 맞추는 것이다. 현재는 4%만 1등급을 줘야 하는데 동점자나 만점자 수가 이 비율을 넘어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변별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생기니 고난도 문제 출제를 위해 교과서 외부의 어려운 지문을 내거나 지엽적인 정보를 비틀어 기괴한 문제를 출제하기도 한다. 사실 평가만 제대로 이뤄지면 수업 방식도 상당히 바뀔 수 있다.”
―영어 사용이 늘면서 우리 말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 보면 외래어를 정말 많이 쓴다. 아예 영어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이 봤다. 학생들의 경우 외래어를 섞어서 쓴다기보다 신조어들을 많이 만들어서 쓴다. 그냥 다 줄여버리는데, 나도 그게 무슨 말인지조차 알 수 없는, 출처도 모르는 신조어들이 많다. ‘그런 거 너무 많이 만들면 너희들의 자식이 힘들어진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이런 외계어 같은 말들이 한글을 해칠 수 있다.
영어는 하루에 200개씩 외우면서 학생들이 국어의 표현들은 그만큼의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막상 외국에서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K팝이나 드라마 인기 덕분에 한국어 전공자도 늘었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필요하다. 요즘 애들은 인스타그램 같은 SNS 사용이 많고 문화적으로 교류가 활발하다. 영어를 편하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어는 영어대로 쓰되 우리 국어는 국어대로 지켜야 한다.”
강일고 윤혜정 교사(45)
△ 1980년 서울 출생
△ 2003년 성균관대 교육학·국어국문과 졸업
△ 2004년∼고등학교 교사
△ 2007년∼EBSi 국어 영역 강사
△ 2009년, 2024년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 수상
△ 2010∼2012년 EBS 언어영역 최우수강사 연속선정
△ 2011년 EBS ‘개념의 나비효과’ 강의 진행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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