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가을이 왔다는 걸, 매년 한강에서 열리는 불꽃축제로 알아챈다. 인파가 몰리는 여의도까지 가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 대신 한강으로 이어지는 홍제천 근처에 살고 있기에, 우리 가족에겐 작은 기념일 같은 연례행사가 생겼다. 우리 집에서 어디까지 걸어야 불꽃이 보일까. 불꽃축제가 열리는 밤에는 가족들과 한강변을 따라 걷는다. 밤하늘에 불꽃이 보일 때까지 걸어보는, 일명 ‘불꽃놀이 산책’.
올해도 망원유수지에서 양화대교까지, 앞서 걷는 사람들을 따라 강변을 걸었다. 어두워지자 오히려 밤이 선명해졌다. 선선한 바람결에 안겨 오는 짙은 풀냄새, 도시의 불빛에 일렁이는 잔물결, 들뜬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웃음과 대화가 허밍처럼 번졌다. 앞사람의 걸음과 아이의 보폭에 맞춰 발맘발맘 걷다 보니 마음이 두둥실 설렜다. 어디까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는 여유와 설렘이야말로, 이 산책의 묘미니까.
사람들이 모인 대교 아래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하늘에 불꽃이 피었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우와우와” 모르는 사람들과 한마음으로 감탄했다. 겨우 끄트머리만 보이기에 화려한 불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두운 도심 숲의 능선으로 피었다가 아스라이 사라지는 불꽃도 충분히 아름다웠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일기를 쓰고 싶은데, 너무 많은 불꽃을 기억해야 해서 머리가 어지럽다고. 생각지도 못한 귀여운 걱정에 사뭇 진지하게 답해 주었다. “단 하나만 기억하면 돼. 모든 걸 다 기억하려고 하면 가장 좋은 기억이 사라지거든. 그냥 잊어버려야지 했는데도 자꾸만 떠오르는 불꽃 하나가 있을 거야. 그거 하나만 기억해도 괜찮아.”
일본 시인 사이토 마리코는 시 ‘눈보라’에서 흩날리는 눈발에서 눈송이를 붙잡아보던 놀이를 회상하며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를 만났다고 말했다. 나도 꼭 그런 마음이었다. 아이가 다른 모든 불꽃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불꽃을 만나보길 바랐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살아갈 힘을 주는 반짝이는 기억은 그런 거니까.
아이는 마음에 드는 불꽃 하나를 정했다고 했다. 나는 불꽃을 보던 기억 하나를 간직하기로 했다. 겨우 끄트머리만 보이는 불꽃을 보며 “우와우와” 감탄하던 모두가 귀여웠던 가을밤. 어둠 속으로 불꽃이 사그라질 때, ‘우리 행복하자’ 쏘아올렸던 조용한 소원 하나. 뜻깊은 기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올해도 단 하나의 좋은 기억을 만나보았다.고수리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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