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란다더니, 전기를 쓰는 사람에게 햇빛과 바람 값까지 내놓으라는 세상이 됐다. 최근 일부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내놓고 있는 ‘햇빛연금’ ‘바람연금’은 이름만 들으면 그럴싸하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소를 지역에 설치하고, 그 수익 일부를 주민에게 분기별로 배당해 마치 연금처럼 받게 하자는 것이다. ‘자연에서 얻은 전기를 지역과 나누자’는 취지라니, 듣는 귀는 솔깃하다.
몇몇 지역에선 이미 제도화가 진행 중이다. 전남 신안군은 태양광발전소 수익의 30%를 주민에게 나눠 주는 조례를 만들었고, 협동조합에 가입한 군민은 분기마다 평균 10만~15만원을 받는다. 햇빛연금이란 이름처럼 지역 노인층에 인기가 높고, 일부 섬 지역에서는 주민 유입 효과까지 있었다. 바람연금도 준비 중이다. 8.2GW 규모의 대형 해상풍력 사업에 주민이 참여하고, 최대 연 13% 수익률을 약속한 ‘군민펀드’를 구성한다는 계획도 나왔다.
그러나 따져보자. 이 연금의 원천은 어디인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빛과 바다에 부는 바람은 공짜지만, 이를 수익으로 바꾸는 발전사업은 공짜가 아니다. 연금의 재원은 결국 전기를 사는 소비자, 즉 전 국민이 부담하는 전기요금과 정부 재생에너지 보조금이다. 예컨대 주민참여형 사업에는 보조금인 재생에너지 인증서(REC) 가중치가 더해지고, 이 비용은 한전을 통해 전력 구매자들이 나눠 낸다. 결국 몇몇 지역 주민이 연금을 받는 동안 그 재원은 다른 지역 전기소비자에게서 나간다는 뜻이다. 현재 ㎾h당 전기요금은 180원 수준이다. 해상 풍력에 정산단가에 보조금을 합하면 350~400원이 될 것이다. 이 부담은 전기 사용자가 질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이상한 그림이 보인다. 태양광과 풍력은 ‘분산형 에너지’라며 생산지 인근에서 쓰는 것이 장점이라더니, 이제는 ‘우리는 전기 안 쓸 테니, 수도권 당신들이 써주고 돈은 우리에게 달라’는 구조가 돼버렸다. 좋은 말로 ‘지역상생’이지, 따지고 보면 ‘전기요금 역진세’다. 가난한 도시 서민이 부유한 땅 부자에게 전기료를 부쳐주는 셈이다. 게다가 하루 4시간도 못 쓰는 태양광과 6시간 정도 쓰는 풍력 전력을 송전하기 위해 소위 ‘에너지 고속도로’를 건설하자고 한다. 그 고속도로는 하루 6시간 남짓 쓰니 아주 비싼 통행료를 내야 할 것이다. 이건 추가 요금이다.
더 우려되는 건 이 구조가 일정 수익을 고정적으로 약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발전량이 줄거나 전력 단가가 하락해도 배당은 예정대로 나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수익이 부족한 해에는 새로 모집한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을 돌려야 한다. 이런 구조는 역사적으로 ‘폰지사기’라 불렸다. 독일 프로콘(Prokon)은 풍력사업으로 7만여 명에게 연 8% 이자를 약속했다가 투자금 돌려막기를 하다 파산했고, 스페인에선 정부가 태양광 고정단가를 폐지하자 수천 명의 투자자가 피해를 봤다.
국내에서도 전국 단위로 햇빛·바람연금을 확대할 경우 연간 수조원의 수익이 필요하다. 예컨대 10GW 규모의 태양광발전에 연 10% 수익을 약속하면, 15조원 건설 투자비용의 10%인 연 1조5000억원이 배당금으로 나가야 한다. 실제 발전 수익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세금 및 전기요금 인상으로 메워야 한다. 이는 지속 가능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물론 주민 참여형 에너지 사업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지역 수용성을 높이고, 개발이익을 나누는 모델은 장려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연금’이라는 이름으로 과도한 수익을 보장하는 순간, 그 부담은 음지에서 국민 모두에게 전가된다. 결국 과도한 수익 보장이 전기요금 폭탄으로 되돌아오지 않게 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폭탄을 피할 방법이 없다. 앞으로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자력도 주민 참여형 사업을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에너지 정책은 소셜 카지노가 아니다. 보이는 수익 너머에 숨겨진 비용 구조를 직시하고, 공정한 부담과 현실 가능한 수익률을 고민할 때다. 햇빛으로 점심을 차릴 수는 있어도, 공짜 점심은 없다. 그 점심값을 누가 낼지, 지금이 바로 따져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