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 국가에서 신임 대통령이 내리는 ‘1호 업무 지시’는 그 자체로 상징성이 크다.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문제에 집중하고 어떤 가치를 우선시할지를 국민과 행정부에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 4일 1호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 점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했다. 취임사에서 ‘불황과의 일전’을 선언한 뒤 나온 후속 조치다.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같은 날 저녁 전 정부에서 임명된 경제 부처 관료들을 불러 첫 비상경제 점검 TF 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개인 전화번호를 관료들에게 알려주며 정책 제안을 직접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경제 살리기와 민생 회복을 위해 ‘속도전’에 나선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일이다. 한국 경제가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 분기 대비 역성장(-0.2%)했다. 민간 소비, 건설투자, 설비투자 등이 일제히 감소해 내수 전반이 위축되고, 통상 전쟁으로 수출도 줄었다. 한국은행은 올해 연간 성장률이 0.8%에 머물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 경제가 연간 마이너스나 0%대 성장률을 나타낸 것은 오일쇼크,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사태 등 다섯 차례에 불과하다. 새 정부가 비상경제 점검 TF 구성 후 성장률을 일정 수준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서두르는 이유다. 정부는 최소 20조원에서 많게는 30조원 이상을 고려하고 있다.
경기 불황기에 재정을 풀어 경제에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추경을 편성할 때 반드시 고려할 점이 있다. 최근 성장 절벽은 ‘경기 순환적 요인’ 외에도 ‘구조적 원인’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이 최근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3~2024년 민간 소비 증가율은 연평균 2.0%로 2001∼2012년(3.6%)보다 1.6%포인트 낮아졌는데, 이 중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하락률은 절반인 0.8%포인트로 추산됐다. 2015∼2030년엔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둔화 폭이 1.0%포인트까지 커질 것으로 한은은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 증대에 중점을 둔 선심성 추경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구조개혁을 병행하지 않고 이뤄지는 소비 추경은 반짝 효과를 낼 뿐 성장률은 다시 내려간다. 일본처럼 무리한 소비 추경을 반복하면 재정건정성만 훼손시킬 수도 있다. 경제활동 참여 인구를 확대하고 서비스업, 자영업 등 영세 사업자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지원하는 용도로 추경을 편성한다면 재정 투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재정을 마중물 삼아 경제 선순환을 되살리는’ 방식일 수도 있다.
불황과의 일전에선 내수의 또 다른 축인 투자를 되살리는 방안도 필수다. 올해 1분기 한국 경제가 역성장한 데는 민간 소비(전 분기 대비 0.1% 감소)보다 건설투자(3.2% 감소)와 설비투자(2.1% 감소)가 훨씬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 지표인 GDP는 ‘소비+투자(건설·설비)+순수출’로 구성된다. 투자가 살아나지 않고는 0%대 성장률 수렁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2018~2021년 과잉 투자 후유증으로 조정기를 겪고 있는 건설투자를 단기간에 빠르게 늘리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미래 사업에 도전적으로 투자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필요한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면 설비투자는 다시 성장률에 기여할 수 있다. 아울러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 불법 파업을 조장할 수 있는 노란봉투법, 주 4.5일 근무제, 획일적 법정 정년 연장 등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는 정책 도입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사회 안전망 확충과 병행해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등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도 추진해볼 만하다. 이 과정에서 일시적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지자를 설득하고 결단해야 하는 이 대통령의 리더십이 요구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이제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