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공학.’ 한국전쟁 후 폐허만 남은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기술 중 하나다. 열악한 환경에서 배운 ‘토목쟁이’들은 경부고속도로 같은 산업 인프라를 깔고, 조선·자동차·철강·반도체로 이어지는 제조 강국의 초석을 닦았다. 토목공학과는 1970~1980년대 인기 학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많은 토목공학과가 사라지고 몇몇 대학은 건설환경공학과,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등 ‘참신한’ 이름으로 바꾸고 있다. 하지만 상황 반전이 쉽지 않다. 그 분위기는 산업 현장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요즘 건설 공사 현장에선 젊은 연령대의 관리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이 현장을 기피하고 있어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큰 원인은 모든 산업 관리직을 통틀어 감옥에 가야 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점이다. 안전사고로 직원이 많이 구속되는 업종 중 ‘건설업’ 비중은 압도적이다. 감옥행 사례는 올해도 이어진다. 지난 2월 사상자 10명을 낸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구조물 붕괴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 및 하청업체 현장소장이 줄줄이 구속됐다. 2~3년 전 발생한 서울 마포 아파트 건설 현장과 광주광역시 아파트 건설 현장의 사망으로 건설소장들이 올해 초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현장 관리자들은 안 그래도 힘든 현장 살이에 사법 리스크까지 감수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빠진 현장엔 50대 이상 일용직 근로자와 외국인 근로자가 가득하다. 전날 술이 덜 깬 상태로 안전화 대신 슬리퍼를 신고 나타나는 고령 인부, 현장 경험이 적고 기본적인 한국말조차 모르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뒤섞여 일한다. 관리자는 안전교육 자료를 4~5개국 언어로 배포해야 한다. 안전의식이나 소속감도 엷다. 일당을 챙기고 나면 안전벨트와 안전화는 당근마켓을 통해 중고로 팔아먹는다. 우리나라 건설 현장의 현주소가 이렇다. 중소형 건설사는 물론 대형 건설사 산업 현장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건설사들이 안전을 등한시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된 후에는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안전 예방 전담 조직을 만들어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래도 안전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10대 건설사의 중대 재해 사망자는 2012년 29명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된 이듬해인 2023년 18명으로 주춤하는 듯했지만 이후 다시 늘고 있다. 지난해는 25명이고 올해는 9월 현재 20명이다. 중소 건설사는 상황이 더 심하다. 건설 현장 사망자는 여전히 다른 산업 현장의 사망자를 합한 것보다 많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산업 안전’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모습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하다. 이 대통령은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데 이어 최근엔 이를 담은 ‘노동안전 종합 대책’을 내놨다. 연간 세 명 이상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회사에 영업이익 5% 이내 과징금을 부과하고 영업정지와 등록말소를 시행하는 등 강력하게 제재하는 내용을 담았다. 중대재해 사업장엔 1년간 고용도 제한하기로 했다. 건설사들이 큰 사고를 내면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 대책이 안전사고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강도가 약해 안전사고가 계속됐던 것일까.
건설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더 깊숙이 들여다봐야 할 때다. 관리직이 왜 현장을 떠나는지, 현장 근로자의 프로 의식은 왜 점점 결여되는지, 우리나라 중대재해 사망자 비율은 왜 다른 나라보다 높은지 말이다. 당장 공공 발주 공사부터 고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낮은 낙찰가에 경쟁하느라 원가 이하에 하도급을 주거나 자재비 단가를 후려치는 사례가 지금도 횡행한다. 공사 기간에 대한 과도한 압박이 부실 시공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얼마 전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의 우선협상대상자를 맡은 현대건설은 국토교통부에 ‘공사 기간으로 기존 목표인 84개월보다 긴 108개월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안전 문제 등의 이유로 공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징계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건설 현장이 안전을 우선하는 문화가 정착하려면 아직도 만연한 ‘낡은 관행’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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