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개헌보다 타협정치 회복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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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개헌보다 타협정치 회복이 먼저다

<빅 픽처>로 유명한 더글러스 케네디가 최근 <원더풀 랜드>라는 소설을 냈다. 배경은 두 나라로 양분된 미국이다. 이념과 가치관의 차이로 미국이 ‘공화국연맹’과 ‘연방공화국’으로 갈라져 비타협적 대치를 한다. 공화국연맹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바탕이 되고, 연방공화국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지만 국민에게 마이크로칩을 생체에 이식해 감시한다. 두 나라가 서로 자기 체제가 옳다고 심리·첩보전을 펼치는 이야기다. 소설을 읽으며 타협 없이 양분된 우리의 미래를 보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여야의 극단 대립과 비상계엄으로 온 국민이 ‘탄핵 찬성’ ‘탄핵 반대’로 갈라져 유사 내전 상황에 이르렀다. 생업에 몰두해야 할 서민들조차 뉴스를 따라잡느라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늦출 수 없는 과제는 비상계엄 재발 방지책이지만, 여야는 계엄 원인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을 뿐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조기 대선만 보고 있고, 국민의힘은 계엄 동조 비난에서 탈출하고만 싶다.

‘12·3 계엄’ 사태 원인은 한마디로 여소야대하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교착 및 대립에 있다. 줄 탄핵과 예산 무단 삭감 등 거대 민주당의 입법독재식 행태는 누가 봐도 지나쳤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적 타협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계엄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정치력, 인내심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제도 측면에서 본다면 여소야대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라 제왕적 국회가 문제의 본질이다. 그런데 과거에도 여소야대가 있었는데 문제가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노태우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돌파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DJP 연합’이라는 정치력으로 극복했다. 따라서 지금의 정치 실패를 ‘타협 부재’가 아니라 ‘87년 헌법’에 돌리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87년 헌법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뽑힌 대통령들의 정치력이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만큼 크지 않다는 게 핵심이다. 정치력이란 정치적 수단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 즉 타협 능력이다. 노태우는 전두환 밑에서, 정치인 김영삼·김대중은 박정희 대통령 시기 타협과 톨레랑스(인내심)를 키웠다.

타협과 톨레랑스는 민주주의의 덕목이다. 유사하게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민주주의 가드레일로 ‘관용과 절제’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국회법 내에서 거대 야당이 줄 탄핵을 할 권한, 정부 예산을 삭감할 권한을 갖지만 사용을 자제하는 것, 대통령이 법안 재의권(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비상계엄을 선포할 권한을 갖지만 권한 사용을 자제하는 것, 이런 식의 ‘자제’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덕목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이 과도한 탄핵권·입법권 사용을 자제하고 또 대통령이 거부권·계엄권 사용을 자제했다면 ‘대행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국회를 개헌을 통해 해결해야만 한다는 의견이 있다. 대통령 권한 축소 방안, 이원정부제, 내각제 도입 여부가 핵심이다. 하지만 ‘개헌 만능론’을 경계해야 한다. 4년 중임제 개헌은 대통령 권한 강화지 권한 축소가 아니다. 4년 중임 대통령이 5년 단임 대통령보다 권한이 막강하다. 재임을 위해 첫 번째 임기 말 나올 포퓰리즘적 돈살포 우려도 있다.

3선 개헌 시도로 정치가 혼돈에 빠질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내각제 도입을 해답으로 보기 어렵다. 국민 대다수가 내각제를 반대하는 데다 지금의 국회와 국회의원 수준으로 장면 내각의 혼돈을 넘어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제도다. 국회가 총리를 선출하는 대신 대통령이 국회 해산권을 갖는 이원정부제가 그나마 권력분산 개헌안으로 보이지만 의도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비상계엄을 초래한 정치 실패는 ‘정치 실종’이 원인이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북한과 대비된 ‘포용적 국가’인 한국의 위기 원인으로 여당과 야당이 그 어떤 문제에도 타협을 이루지 못하는 양극화를 짚었다. 거대야당과 대통령이 서로 권한 사용을 자제하고 타협하는 정치로의 복귀가 개헌보다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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