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테슬라가 발표한 로보택시 서비스 비용은 정률 4.2달러다. 정식으로 출시하면 마일(1마일=약 1.6㎞)당 0.3~0.4달러를 부과할 계획이다. 마일당 평균 1~2달러인 우버 승차 비용과 비교하면 훨씬 저렴하다. 우버 운영 비용의 큰 비중(미네소타주 기준 평균 마일당 0.63달러)을 차지하는 운전자 급여가 없기 때문이다. 로보택시에는 팁도 줄 필요 없다.
로보택시는 피지컬 AI(물리 세계에서 작동하는 인공지능)가 시장 질서를 뒤흔드는 대표 사례다. 교통·물류·제조 등 각 영역에서 피지컬 AI가 도입되면서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인건비를 줄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 시장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충격이 예상된다. ‘AI 대전환’을 추진 중인 이재명 정부 역시 ‘노동 대전환’을 병행하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잇따를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 기업 생존 좌우하는 AI 자동화
26일 테크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기가팩토리에서 생산하는 로보택시 모델 사이버캡에 ‘언박스 공정’을 도입할 계획이다. 여러 패널을 먼저 제작한 뒤 한 번에 결합하는 방식이다. 예전처럼 직원이 일일이 차량 모듈 안에 들어가 조립하는 대신 넓은 공간에서 로봇이 패널을 제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이를 통해 생산 비용을 최대 50%, 인력을 40% 줄일 계획이다.
중국의 샤오미는 24시간 무인 운영되는 ‘다크 팩토리’에서 스마트폰을 제작하고 있다.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로봇 75만 대 이상을 배치해 물류센터 업무를 대거 자동화하고 있다. 3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지난 3월 준공된 현대자동차의 미국 조지아주 메가플랜트에서도 첨단 공장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로봇 900여 대가 부품 조립·운송 등 사람이 하던 업무를 보완한다.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연 44대인 직원당 차량 생산량이 메가플랜트에선 114대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은 로봇 제조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에 약 3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한국에서 쉽사리 도입하지 못한 자동화 설비를 미국에서 시험해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아는 2018년 경기 광명시 소하리 공장에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했으나 노조 반대로 무산됐다.
◇ 피지컬 AI 확산의 ‘동전의 양면’
정부 역시 이런 방향성에 공감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17일 ‘대한민국 진짜 성장을 위한 보고서’에서 “기존의 제조업에 AI를 융합하면 자동화와 스마트화가 가능해져 고부가가치 전환이 가속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동화라는 동전의 뒷면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다.
AI와 로봇 확산으로 인한 대량 실업은 이미 미국 빅테크 중심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월마트가 대표 사례다. 지난해 연매출이 5년 전보다 1500억달러(약 207조원) 증가했지만 직원은 7만 명 감소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을 중심으로 미국 테크업계에서는 올 들어 6만 명 이상이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컨설팅업계는 그간 취업 사다리 역할을 한 리서치 어시스턴트(RA) 채용을 줄이고 있다. AI 개발 스타트업인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는 “실업률이 10~20%로 증가하고 사무직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보고서에서 “AI가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지만 동시에 일자리의 51%는 AI로 인한 일자리 대체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당근마켓, 카카오페이 등 국내 굴지의 테크 기업도 정규직 채용을 줄이고 계약직을 늘리고 있다. 경직된 고용 시스템에 맞춰 기존 직원을 해고하기보다 신규 채용을 줄이는 ‘조용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로봇·토큰세는 이중규제 부담
일각에서는 고용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로봇세·토큰세(AI 연산 기본 단위인 토큰에 매기는 세금)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업으로 줄어드는 경제 총수요를 메우기 위한 소득 보장 정책이 필요하고, 그 재원을 기업으로부터 마련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9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대중이 일자리를 잃더라도 구매력은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로봇세, 즉 AI에 부담금을 부과하면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 기업을 이끄는 아모데이 CEO 역시 AI를 통해 거두는 수익의 3%를 세금으로 거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로봇·토큰세가 거꾸로 기업들의 ‘AI 대전환’에 장애물이 될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국내 대형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히려 AI와 로봇을 도입하면서도 고용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규제가 아니라 진흥책이 절실하다”고 제안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업의 AI 도입이 늦어질 경우 기업 경쟁력이 뒤처질 것이고 이는 기업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고용 안정성도 크게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봇·토큰세 같은 규제 위주의 정책이 향후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를 가로막을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메타는 지난해 매출의 약 34%를 R&D에 투자했다. 지난달에는 28세의 CEO 알렉스 왕이 이끄는 AI 데이터 레이블링 스타트업 스케일AI를 140억달러(약 19조원)에 인수했다. 테크업계에서는 이런 메타의 공격적인 행보가 SNS 이후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른 AI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기업이 동원할 수 있는 총알에 따라 미래 경쟁력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AI가 일자리의 미래를 빠르게 바꾸고 있는 만큼 기업에도 이에 맞는 고용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AI 도입은 노동 수요를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기술적 역량을 요구하므로 국내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이중구조는 근로자의 일자리 전환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 시대에 맞는 재교육 체계도 요구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 시대에 맞는 교육훈련 체계는 좌우의 이념 문제가 아니라 기술 변화에 따른 국가의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김인엽/최영총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