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기까지[내가 만난 명문장/김숨]

4 weeks ago 10

“언젠가 난 오션 브엉을 사랑할 거야.”

―오션 브엉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

김숨 소설가

김숨 소설가
“사랑해”라는 고백을 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사랑의 대상이 ‘너’가 아닌 ‘나’인 경우, 그 시간은 생의 시간으로 모자라 생 이후의 시간까지 요구되며 불가능한 고백으로 남겨지고 만다.“나는 나를 사랑해(사랑할 거야).” 이 말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이 타인을 대하는 방식, 세상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그 의미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한 알의 모래에 불과한 아주 협소한 말이 될 수도 있고, 사막처럼 광대한 말이 될 수 있다. 때때로 너무 낭비되고 있는 것 같은 말. 그래서 거부하고 싶기도 한 이 말.

오션이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요구됐는지를 알기 위해선, 베트남계 미국인으로 영어로 시와 소설을 쓰는 그의 개인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의 첫 자전적 소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를 읽어야 한다. 그의 개인 역사를 이해한다는 건 (베트남 전쟁 때 갓난쟁이인 딸과 먹고살기 위해 미군을 상대하다가 미군 병사의 아기를 낳은 할머니로부터 시작되는) 그의 가족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장기처럼 장착된 전쟁과 폭력의 트라우마와 미국 사회에서 너무도 손쉽게 약물에 노출되고 그 중독으로 죽어간 친구들이 남긴 트라우마.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에 퀴어로서의 정체성이 더해진 겹겹의 분열을 예리하고 정제된 언어로 재정립하며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의 고통으로 꽉 찬 삶을 아름답고 숭고한 삶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사랑’에 도달한 그다.

“오션아, 오션아―/일어나. 네 몸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몸의 미래야. 그리고 기억해,/외로움마저도 세상과 같이 보낸/시간이라는 걸.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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