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5일 방송된 '최악의 연쇄 성폭행범 '발바리'를 잡아라'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강다니엘, 나르샤, 멜로망스 정동환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발바리가 잡혔다
때는 2006년 1월, 대전에 있는 경찰서야. 형사과 사무실에, 한 남자가 들어왔어. 그는 이 지역 신문사의 사회부에서 일하는 유효상 기자야. 사건 기사를 쓰다 보니까, 매일 경찰서에 가서 그날 있었던 사건들을 확인했대. 그러다 보니 형사들과 친하게 지냈어. 그러던 어느날, 유 기자는 기자의 촉을 팍 세우게 됐어.
"사건 기자 특성상 아침과 저녁에 경찰서를 한 바퀴씩 순회를 합니다. 일본말로 사스 마와리라고 하는데, 그래서 경찰서를 한 바퀴씩 돌 때마다 그날그날 있었던 사건들을 체크하게 되는데. 형사팀장 한 분이 그렇게 열심히 수사를 하는 거예요. 남들은 다 퇴근했는데 혼자 사무실에 앉아서 CCTV를 몇 번을 돌려보고. 신발 족적 수백 개를 갖다 놓고서 맞춰보고.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런 걸 계속 보면서 기자로서 좀 더 강한 취재 의지가 생기더라고요."
-유효상 기자, 현 뉴시스 기자, 전 충청투데이 기자
형사과장이 퇴근도 마다하고 한 사건의 수사에 몰두하고 있어. 하도 열심히 수사하길래 유 기자도 관심을 가졌는데, 하루는 형사과장이 유 기자를 불러 사건에 대해 먼저 알려주더래.
"유 기자, 이 내용은 지금 기사가 안 나갔으면 좋겠어. 그래서 일부러 먼저 얘기하는 거야 부탁하려고. 범인 잡는 게 우선이잖아. 그러니까 유 기자, 조금만 기다려줘."
형사과장이 잡겠다는 범인의 정체는 '발바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낳은 한 연쇄 사건의 범인이야. 형사과장의 부탁에 유 기자, 범인을 잡을 때까지 보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그렇게 둘은 특별한 연을 맺게 된 거지.
그날도 경찰서에 간 유 기자는, 형사과장과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길 했는데, 형사과장이 유 기자에게 연쇄 사건의 범인 발바리가 잡혔다고 알려줬어. 이 엄청난 사건의 범인이 검거됐다는 소식에, 전국의 기자들이 경찰서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어. 그리고 한참 뒤, 경찰서 앞에 그 범인이 모습을 드러냈어.
"잘못했습니다."
수많은 기자들이 취재하느라 난리가 났어. 취재하려는 기자들과, 이를 막는 형사들로 인해 경찰서는 아수라장이 됐어. 그 사이로 형사들이 범인을 이끌고 형사과 사무실로 들어왔어. 기자들의 출입이 막힌 사무실 한쪽에서, 조사가 막 시작됐어. 그리고 그 안에, 유 기자가 있었어. 어떻게? 재빠르게 노트북을 들고 책상 아래로 숨은 거야. 그때 유 기자, 형사과장과 눈이 딱 마주쳤어. 그 순간 형사과장이, 쉿! 눈치를 줬어. 기사 쓰는 걸 암묵적으로 허락한 거야.
"제가 어떻게 해야될까 생각하다가 노트북을 끌어안고 책상 가운데 홈 있죠. 숨었어요. 조용히 노트북을 가방에서 꺼냈죠. 그랬더니, 형사과장이 지나가다 봤어요.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고 거기."
-유효상 기자
다른 기자들은 밖에서 한마디만 해달라고 난리를 치고 있을 때, 유 기자는 범인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의 진술을 듣게 됐어. 그런데 내용을 들으면 들을수록 심각해. 차마 믿기 힘들 만큼,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던 거야. 그렇게 경찰서 책상 아래에서 쓴 유 기자의 기사가 대서특필되고,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났어. 바로 이 기사야.
<'발바리' 잡혔다>
'전국 여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부녀자 성폭행범(일명 발바리)이 경찰에 붙잡혔다'
'발바리는 지난 1998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대전 충남 충북 50여차례 등 전국에서 77차례에 걸쳐 100여명의 부녀자들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아 달아나 전국 경찰의 표적이 돼 왔다.'
-당시 유 기자의 보도
8년 가까이 전국에서 벌어진, 연쇄 성폭행 사건이었어. 알려진 피해자만 184명. 한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 성폭행 사건이었던 거지. 범인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범행을 저지르는 탓에, '발바리'라는 별명까지 붙었어. 전국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모든 형사들이 미치도록 잡고 싶어 했던 발바리. 그가 어떻게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은 최악의 연쇄 성폭행범이 됐는지, 지금부터 그 모든 이야기를 들려줄게.
▲ 최악의 연쇄 성폭행 사건
이 연쇄 성폭행 사건이 처음 알려진 건, 1999년이었어. 대전의 한 빌라에서, 혼자 살던 20대 여성이 한 괴한으로부터 성폭행 당한 사건이 발생한 거야. 가스 검침원으로 위장한 채 집에 침입한 괴한은, 갑자기 돌변해 피해자를 흉기로 위협한 뒤, 양손을 결박하고 성폭행했어. 그리고 집에 있던 현금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어. 그런데, 그 뒤에도 대전 원룸촌 일대에서 이와 비슷한 성폭행 사건이 계속 벌어지기 시작했어. 얼마나 심각했는지, 이걸 한번 봐봐.
그 시기 대전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야. 사건은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발생했어. 피해자는 초반엔 유흥업소를 다니는 여성들이었는데, 나중엔 직업도 천차만별이었어. 피해자들 나이도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했어. 그야말로 무차별적인 범행이었던 거지.
경찰은 이 수많은 사건을 왜 동일범의 소행으로 봤을까. 범행 수법이 같았거든. 범행은 주로 피해자들이 자고있는 새벽 시간대에 발생했어. 범인은 주로 가스 검침원 행세를 하거나, 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가 창문을 통해 침입했어. 집에 침입한 범인은, 피해자들에게 칼을 들이밀며 위협했어. 피해자들은 모두 무방비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이런 일을 당했어.
"내 친구 중에 한 명이 진짜 그랬다니까요.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는데 누가 뒤적뒤적 하더래요. 그런데 이렇게 속옷 벗기는데 툭툭 치면서 '야야' 이렇게 깨우면서 그거에 겁을 먹어서 반항을 하나도 못하고."
-피해자 지인
"언니는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지금부터 말 한마디 하는 데 얼굴 10cm씩 찢겠다고."
-피해자 지인
"그러니 내가 얼마나 무서웠겠냐고, 칼이 진짜 이따만 하다니까."
-피해자
피해자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짐작이 돼? 그런데 들어보니까, 이 범인이 범행 때마다 꼭 하는 행동이 하나 있었어.
범행할 때, 이렇게 수건을 찢은 뒤, 이걸로 피해자를 결박했대. 근데, 항상 피해자의 집에 있던 수건을 쓰더라는 거야.
범인의 특징적인 행동은 또 있어. 범행 후 달아나기 전엔, 꼭 현금을 훔쳐갔어. 적으면 5천 원부터, 많으면 100만 원 단위까지. 갈취한 돈만 총 4천 7백만 원이었대. 금액만 봐도, 얼마나 많은 범행을 했는지 느껴져?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저는 좀 많이 했어요 이사를. 지금까지 한 6번? 한곳에 오래 안 있을 것 같아요. 하도 생각이 나서. 베개 밑에다 칼을 놓고, 과도를 놓고 그렇게 잤었어요. 지금 1년이 다 돼 가는데도 저는 그 생각만 나면 진짜 잠을 못 자요. 오죽하면 불면증 걸려서 이틀에 (수면시간이) 3시간?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어요. 남자친구도 안 만들어요."
-피해자
"나도 있고 형부도 있고 애들도 다 있는데, 꼭 방에 들어가면 문을 잠가요. 술을 많이 마셔요. 매일. 술이 없이는 잠을 못 자고 수면제도 먹고."
-피해자 가족
성폭행은, '영혼 살인'이라고도 한대. 그 고통이 오랫동안 잊기 힘들 정도로 너무 크고, 트라우마도 굉장히 심하다는 거야. 성폭행만으로도 끔찍한 범죄인데, 사건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더 충격적이야. 범인은, 상상 그 이상으로 대담하고 악랄했어.
<잠겨져 있지 않은 출입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간 뒤 피해자1, 피해자2에게 부엌칼 한 자루를 들이대면서 방 안에 있던 수건을 찢어 피해자들의 팔과 다리를 연결하여 묶은 다음, 13만원을 강취하고 각 1회 강간함.>
<잠겨져 있지 않은 출입문을 통하여 집안으로 들어간 뒤, 피해자1에게 회칼 한 자루를 들이대며 위협하여 피해자2, 피해자3이 있는 층으로 데려간 다음, 그곳에 있던 수건을 찢어 피해자들의 손목을 연결하여 묶어 반항을 억압한 다음, 14만원을 강취하고 각 1회씩 강간함.>
피해자가 동시에 두 명, 혹은 세 명인 사건도 있어. 동시에 여러 명을 상대로 범행한 사건이, 엄청 많았다는 거야. 집에 같이 살고 있던 사람들, 혹은 같은 건물에 살던 사람들까지 동시에 피해를 당한 거야. 심지어 하루에 범행을 두 번 저지른 적도 있어. 범행 후 고작 한 시간 반 만에, 또 범행을 했던 거야.
이게 끝이 아냐. 수사 내용에 의하면, 범행 후 피해자에게 돈을 요구했어. 그런데 피해자가 돈이 없다고 하자 친구에게 돈을 가져오도록 연락하라고 해.
"돈을 가지고 오라고 한 대요, 돈이 없으면. 얘가 돈을 별로 안 갖고 있잖아? 그러면 '친한 친구 와라' 이렇게 하잖아. 그러면 얘가 이제 전화를 하는 거야. '돈을 급하게 써야 되니까 빨리 가져와야 될 것 같아'. 칼을 들고 이렇게 말을 하니까."
-피해자 지인
걱정되는 마음에 돈을 들고 달려온 피해자 친구에게도 범행을 했다는 거야. 범인은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도 모자라 죄책감까지 갖게 한, 악질 중의 악질이었던 거지. 심지어 다른 방에 피해자의 아이가 있는데도 범행을 하기도 했어. 그리고 나선, 피해자에게 샤워까지 시켰대. 철저히 자신의 흔적을 없애려고 했던 거야.
범인은 이런 잔인한 짓을 저지른 후, 떠나기 전 피해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대.
"신고할 생각 하지 마, 어차피 경찰은 나 절대 못 잡아. 신고하면 너희들만 창피해져."
이 얘길 들은 피해자들, 신고할 수 있었을까? 당시는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성범죄 피해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달랐어. 피해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어. 범인은 이 점을 노린 거야. 그래서 신고되지 않은 사건까지 포함하면, 피해자가 200명 넘을 거란 얘기도 있어.
이러다 보니, 대전 분위기는 쑥대밭이 됐어. 한여름에 창문도 못 열고 지내는 건 물론이고, 여성들은 원룸촌 근처를 다니지도 못했대. 그리고 가스총이 그렇게 많이 팔렸대. 여성들이 호신용으로 들고 다녔다는 거야.
"아주 벌벌 떨어요. 어떤 아가씨들은 흉기도 갖고 다닌다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사는데도 원룸촌 주위에는 안 걸어 다녀요."
"무서우니까 버티컬도 치고, 옷으로 막아 놓으면 내가 있는지, 안에 모르잖아요, 일단은. 그리고 출근할 때는 새벽에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불도 이렇게 켜놓고 다니고 거의."
-원룸촌 주민들
▲ 미치도록 잡고 싶다
사건은 점점 커지고, 피해자는 계속 늘어났어. 지금 제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 바로 대전에 있는 형사들이었어. 하도 대전 여러 지역에서 사건이 발생하다 보니까, 대전에 있는 모든 형사들이 사건을 수사할 정도였어. 범인의 별명, '발바리'. 발발 거리며 여기저기서 범행을 저지른다고, 바로 형사들이 지어준 별명이었어. 당시 형사들 기분, 수사에 참여했던 형사님들께 직접 들어봐.
"대전권 형사 중에서 발바리를 안 잡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정말 다 잡고 싶어 한다고. 아니 잡고 싶어 미치겠어. 도대체 어떤 놈인지 얼굴 좀 봐야겠다 이거야."
-과거의 이항열 형사, 대전 둔산경찰서
"대전에 있는 전 경찰관들은 다 알고 있는 사건이고 뭐 누구나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요. 발바리를 해결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전 둔산서로 강력팀장으로 지원을 해서 갔습니다. 발바리 잡겠다고."
-이항열, 당시 대전둔산경찰서 형사
"피의자가 굉장히 잔혹하고 비인간적이고. 보통 상식으로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자행하고 다니니까."
-과거 양승진 형사, 대전 동부경찰서 강력 2팀
"뭐 수갑 채우고 하는 것은 기본이고. 너무 보고 싶어서 범인이."
-양승진, 당시 대전동부경찰서 형사
그럼 도대체 이 발바리, 왜 잡기 힘들었을까? 우선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발이 얼마나 빠른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당시에 현장 주변에서 찍힌 CCTV 영상이 하나 있어.
용의자를 포착했지만, 흐릿해서 형체만 알 수 있는 수준이야. 당시엔 CCTV도 별로 없어서, 추적하기도 어려웠대. 그럼 지문은? 범인은 항상 장갑을 끼고 다녀서, 현장엔 지문도 남아있지 않았어. 그렇다 보니, 발바리를 직접 본 피해자들의 진술이 아주 중요해.
"나이는… 한 40대? 키가 엄청 작고, 몸이 왜소했어요."
그런데, 어떤 피해자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어.
"체격이 엄청 좋았어요. 키가 180cm 정도 됐구요. 나이는 한 20대 정도 된 것 같아요."
피해자들이 기억하는 범인의 모습이, 다 다른 거야. 성범죄 피해자는 트라우마가 아주 심하다고 했잖아. 그래서 그 순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대. 이렇게 범인에 대한 단서가 없다보니, 형사들 입장에선 너무나 막막했던 거지.
그런데 다행히 몇몇 현장에서, 아주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어. 바로 범인의 DNA. 여러 현장에서 나온 DNA가 모두 동일 인물인 건 확인됐어. 하지만 DNA의 주인이 누구인지까진 알 수 없었어. 수사기관이 모든 사람의 DNA를 갖고 있지 않았어.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DNA 데이터베이스가 구축이 되지 않았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5개가 있어요 분소들이. 대전에 있는 게 중부 분소고, 부산에는 남부 분소가 있고. 뭐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 당시에는 DNA가 온라인화 되어 있지 않았어요. 서로 각각이야 분소마다. 만약에 남부 분소에서 사건을 의뢰했다 그러면 남부 분소만 그 DNA를 갖고 있는 거예요."
-이항열, 당시 대전둔산경찰서 형사
수많은 사건들의 DNA가 단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지만, 그게 누군지는 알 수 없었어. 이 DNA로 알 수 있는 건, 범인의 혈액형이 B형이라는 것 뿐이었어.
그래도 다행히, 많은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특징이 하나 있었어.
"몸에서 좀 냄새가 났다는데 이게 무슨 겨드랑이에서 나는 뭐 그런 냄새들이 좀 났다고 해요."
-이항열, 당시 대전둔산경찰서 형사
"처음에는 몸에서 악취가 난다고 냄새가 많이 난다. 땀 냄새가 많이 난다."
-양승진, 당시 대전동부경찰서 형사
피해자들이 전부 하는 말이, 범인의 몸에서 냄새가 그렇게 많이 났다는 거야. 그리고 또 하나. '상희'라는 사람을 찾거나, 대전역에 가는 길을 묻기도 했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면서, '상희' 혹은 대전역을 찾는 남자. 이걸 들었을 때, 어떤 사람 같아? 형사들은 대전역을 이용하는 사람부터, 인근의 노숙자들까지 전부 확인했어. 그리고 이름이 상희라는 사람을 전부 찾아, 그 주변인들까지 조사했어.
이외에 범인이 피해자에게 했다는 사소한 말이나, 범인에 대한 작은 소문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부 확인했어. 범인으로부터 '가족이 없다'는 얘길 들었다는 진술에, 고아원 출신인 사람들도 전부 조사하고, '공사판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진술에, 대전에서 일하는 인부까지 전부 다 조사했어. 그러다 보니 대전에 있는 모든 경찰서엔 발바리 사건 수사 자료가 수백 장씩 쌓여갔어. 병무청 기록을 뒤져 대전에 있는 B형 남자들을 모조리 다 검사했지만, 발바리의 꼬리는 잡히지 않았어.
이제 그냥 맨땅에 헤딩밖에 없어. 모든 형사들이 수시로 대전 일대에서 불심검문을 하고, 잠도 포기하며 새벽마다 밥 먹듯이 잠복을 했어.
▲ 신출귀몰 발바리
발바리를 잡으려 형사들이 대전 곳곳을 뛰어다니던 어느 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한 달에 한 번 꼴로 터지던 사건이, 갑자기 뚝 끊긴 거야.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조용해. 그런데 이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 드디어 끝난 줄 알았던 연쇄 성폭행 사건이, 4개월 만에 또 발생하기 시작한 거야. 그런데, 이번엔 좀 달라. 뭐가? 범행 발생 지역이. 대전에서 약 1시간 거리에 떨어진, 청주에서 벌어지고 있었어.
"원래 창문이 닫혀있었거든요? 근데 창문이 열려있는 거예요. 문을 다 잠그고 이상하다 해서 이렇게 뒤를 돌았는데 문 뒤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벌써 들어왔던 거죠. 칼을 이렇게 들고 있었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죠 반항을. 몸이 되게 단단해서 반항했다가 한 대 맞으면 죽을 것 같았어요."
-청주 피해자
"신발 신고 '누구네 집 아니에요?' 하면서 신발 신고 안으로 들어오더래. '아닌데요?' 이러고 났는데 순간 느낌이 이상했대. 그러더니 이쪽 방에서 친구가 나오니까 칼 들이대고."
-피해자 친구
창문으로 들어와 흉기로 위협하고, 누군가를 찾는다는 수법, 발바리와 매우 비슷해. 찢은 수건도 발견됐어. 게다가 청주 피해자들이, 범인에 대해 공통적으로 말한 게 있었어. 몸에서, 냄새가 엄청 났다는 거야. 그리고 현장에서, 아주 명확한 증거가 나왔어. 바로 DNA. 대조해보니까, 발바리가 맞아. 그러니까 발바리가 범행 장소를 청주로 옮긴 거야. 청주에서 일어난, 발바리 범행이라 추정되는 사건만 약 15건. 그 중에 9건은 확실한 DNA 증거까지 나왔어.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은 경우까지 생각하면, 실제 피해는 더 많을 수도 있어.
이제는 대전에 이어, 청주 온 동네가 발칵 뒤집어졌어. 게다가 상황은 더 심각해졌어. 발바리가, 자신이 성폭행한 피해자의 집에 다시 가서 또 범행을 하기도 했던 거야.
발바리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던 청주 형사들도, 곧바로 이 발바리를 잡으려고 발 벗고 뛰기 시작했어. 시간이 날 때마다 잠복 수사를 하고, 대전 형사들과 수사 자료를 공유하며 발바리를 찾아다녔지만, 발바리는 수사망을 요리저리 피해 다니기 일쑤였어.
"대전에 있는 범인이 청주에 왔을 때는 걱정도 들지만 우리가 꼭 잡아야겠다는 그 생각이 형사들로서 더 강하게 느껴졌고요. 당시 형사분들이 잠복을 많이 섰지만, 특히 저 같은 경우는 뭐 잠복을 혼자 많이 섰거든요. 보통 뭐 11시 10시에서 새벽 4시 사이 범행 시간대 그렇게 한 몇 달을 선 것 같아요."
-이찬호, 당시 청주서부경찰서 형사
그러던 어느 날, 피해자들의 진술 중,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어.
"처음에는 이제 우리가 보이는 수사 먼저 하거든요. 그 다음에 보이지 않는 걸로 하는데, 보이는 수사는 뭐냐면 피해자가 진술했을 때 10만 원이 있든 20만 원이 있든, 7만 원만 가져간다…"
-이찬호, 당시 청주서부경찰서 형사
피해자에게 딱 7만 원만 요구할 때가 많다는 거야. 이찬호 형사는, 이 '7만 원'의 보이지 않는 의미를 이렇게 생각했어. 범인이, 택시와 관련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왜? 당시 법인 택시 기사들은, 회사에 사납금이라는 걸 냈대. 하루 수입 중 일부를 택시 회사에 납부하는 돈을 사납금이라 하는데, 그게 대략 7만 원 정도 했다는 거야. 그럼 범인은, 회사에 소속된 법인 택시 기사, 혹은 과거 택시 기사를 했던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거지.
청주 형사들이 충청도에 있는 택시 회사를 전부 돌아다니며 수사에 속도를 내는 동안, 대전 형사들 역시 수사를 놓지않고 계속 이어갔어.
"얘가 주거지를 이제 청주로 옮겼지 않았느냐라고 생각해서 청주로 올라갔어요. 나름 이제 뭐 청주 버스터미널에서 새벽에 잠복한 적도 많고."
-이항열, 당시 대전둔산경찰서 형사
"청주를 지나가는 차들 상대로 많이 수사를 했고요. 심지어는 청주에서 대전으로 오는 톨게이트에 보면 톨게이트 티켓 있잖아요. 그걸 회수를 하다가 지문 감식도 했었고요."
-양승진, 당시 대전동부경찰서 형사
그런데, 형사들이 점점 수사망을 좁히고 있던 그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 청주에서 활개 치던 발바리가, 갑자기 대전에서 또 범행을 한 거야.
"아주 초상집이죠. 그러니깐 뭐 전부 다 초긴장해서 새벽부터 전 경찰서에 비상이 떨어지는 거예요. 새벽 잠복해서 어떻게든지 잡아내라, 아니면 예방이라도 해라."
-이항열, 당시 대전둔산경찰서 형사
대전에서는, 발바리 검거를 위한 특별 전담반이 차려졌어. 그런데, 이번엔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더 커지기 시작했어. 이걸 한번 봐봐.
이미 대전과 청주에서 이만큼 많은 사건이 벌어졌잖아. 그런데, 발바리 수법과 비슷한 성폭행 사건이,
대구, 구미, 전주, 수원에서까지 벌어진 거야. 사건 현장에서 DNA를 채취해 대조해보니까, 발바리의 DNA와 일치해. 이제는 전국을 돌며 범행을 한다는 얘기야. 대전과 청주 외에 전국 각지에서 15건의 범행을 저질러.
이제 정말 언제 어디서 출몰할 지 모르는 상황이야. 전담반 형사들은 전국적으로 벌어진 사건의 수사 자료를 모으고 피해자들을 일일이 만났어.
"제가 전담팀을 막 들어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왜 못 잡냐,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경찰들은 뭐 하느냐' 막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고요. 또 이제 심지어는 피해 확인 수사를 하기 위해서 피해자들을 많이 면접을 다녔는데, 임산부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러서 그 임산부가 나중에 애를 출산했는데 그 애가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다는 걸 나중에 확인 조사할 때 알게 됐는데, 우시면서 굉장히 힘들어하는 걸 봤습니다. 어떤 피해자분들은 우시면서 '왜 자꾸 오냐. 기억하고도 싶지 않다. 자꾸 오지 말고 묻지 말라. 잡지도 못하면서 왜 오냐' 그럴 때 되게 힘들었습니다. 죄송스럽고. 어떻게 뭐 답변을 드릴 수가 없었고. 꼭 잡아서 오겠다는 말만 드렸습니다."
-양승진, 당시 대전동부경찰서 형사
범인을 아직 잡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이번엔 반드시 잡고 말겠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형사들은 수사를 이어나갔어. 그러던 중 형사들은 대전에서 동시에 세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을 확인했어. 그런데 그 피해자들이, 범인의 얼굴을 봤다고 진술했고, 그 진술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그 진술을 토대로 형사들이, 몽타주를 작성할 수 있었어. 바로 이거야.
형사들은 이 몽타주를 배포하는 건 물론이고, 전국의 범행 장소에 있는 CCTV도 다시 분석했어. 심지어, 사건 발생지에서 대전으로 오고 가는 차량까지 전부 확인했어. 아마 수천 대가 넘었을 거야. 그 수천 대 중 겹치는 차량이 있는지 추리고 또 추린 거야.
▲ 마침내 마주한 발바리
그날은 범행이 일어난 광주와 논산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톨게이트 CCTV를 확인하고 있었어. 그러다 CCTV에 찍힌 여러 대의 차 중 한 대가 좀 이상한 걸 발견했어. 범행 장소인 광주와 논산 톨게이트를 동시에 지나가는 차량이 열 대가량 있었는데, 그중 스포츠카 한 대가 과속을 하면서 지나가더래. 뭐 고속도로에, 스포츠카니까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형사들은 혹시 모를, 0.1%의 가능성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거지.
"스포츠카였기 때문에 또 그럴 수도 있는 있었는데, 좀 그래도 한 번은 확인하고 넘어가야 되겠다 해서 갔던 거였거든요."
-양승진, 당시 대전동부경찰서 형사
곧바로 형사들이, 차량 소유자의 집을 확인해 찾아갔어. 집은 대전의 한 빌라, 3층이었어. 형사들이 집 문을 두드렸어. 그러자 이내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얼굴을 드러냈어. 남자는 한 4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데, 그냥 동네 아저씨같은 평범한 인상이야. 그리고, 아까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한 특징, 냄새가 많이 난다고 했잖아. 근데 이 남자한테, 딱히 냄새가 나는 것 같지도 않아.
확실한 건 과속한 스포츠카의 소유자가 사는 집이라는 것 뿐이야. 아직 범인인지 아닌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야. 형사들은 남자를 떠보기 위해 이렇게 말했어.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며칠 전에 이 앞에서 폭행 사건이 일어났는데, 몇 가지만 여쭤볼 수 있을까요?"
밥을 먹다가 나온 남자는, 입에 밥을 잔뜩 물고 이렇게 말했어.
"아 예예, 제가 양말만 신고 바로 나올게요."
그런데, 양말만 신고 나오겠다는 남자가 나오질 않아. 형사들, 슬슬 느낌이 이상해. 문을 따고 들어가서 봤더니, 이번엔 웬 여자가 한 명 있어. 아까 그 남자의 아내라는 거야.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집안에서 남자는 보이질 않아. 형사들이 아내에게 남편이 어디로 갔냐고 다급히 물었어. 그러자 놀란 눈으로 서 있던 아내가, 손으로 창문을 가리켰어. 창문으로 도망간 거야. 순간 형사들이 깨달았어. 이놈이다!
근데 쫓으려고 보니까, 발이 어찌나 빠른지 이미 사라졌어. 게다가 여기는 3층이야. 보니까 3층에서 가스 배관을 타고 도주한 거야. 발바리도, 피해자 집에 침입할 때 가스 배관을 이용했잖아. 분명해, 이놈이 틀림없어. 형사들이 곧바로 집에 있던 남자의 칫솔과 수저를 챙겼어. 그동안 현장에서 나온 DNA들과 대조한 거야. 결과는? 99.9% 일치해. 그토록 잡고 싶었던 DNA의 주인, 발바리의 정체를 찾아낸 거야.
이름, 이중구. 나이 45세. 직업은 무직. 8년 가까이 쫓았던 발바리의 신원이 드디어 드러났어. 형사들, 이제 한시라도 빨리 도주한 이중구를 찾아야 해.
"저희들이 파악한 거는 집에서 가스 배관을 타고 나와서 도망가서 바로 은행에 가서 모아놨던 돈 1억 3천인가 1억 2천인가를 다 인출해서 논산 처갓집으로 도망갔습니다. 1억 3천 중에 100만 원 정도만 현금으로 해서 도망간 걸로 이제 파악하고요."
-양승진, 당시 대전동부경찰서 형사
형사들이 들이닥친 절체절명의 순간, 돈부터 빼돌린 거야. 아까,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얼마나 빼앗았다고 했지? 4천 7백만 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중구는 피해자들에게 갈취한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놨대. 그리고 도망가는 와중에, 그 돈부터 챙길 생각을 했던 거지. 발바리가 또 도망갔어. 그동안 수사망을 벗어났던 것처럼, 또 어디로 사라질지 몰라. 형사들은 누구든 이중구를 보면 바로 신고할 수 있게, 전국에 공개수배를 했어.
"대전동부경찰서는 10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부녀자를 성폭행한 혐의의 이른바 발바리 45살 이모 씨를 공개 수배했습니다. 경찰은 77건의 범행현장에서 동일한 유전자가 발견됐고 이 유전자는 이 씨의 DNA와 일치한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공개수배가 된 후에도, 형사들은 이중구를 계속 쫓고 있었어. 논산의 처갓집 인근을 탐문하던 중, 이중구의 지인이라는 사람에게, 이상한 얘기를 하나 들었어. 옛날에 이중구가 그 근처에서 살면서 알고 지낸 지인이 한 명 있는데, 그 지인의 인적사항을 적어갔었다는 거야. 근데 보니까 그 지인,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쉽게 인적사항을 가져갈 수 있었던 거야.
이중구, 그 인적사항으로 뭘 할 것 같아? 이 답에 대한 힌트를, 아내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어. 평소 남편에게 이상한 점이 없었냐는 형사들의 질문에, 아내가 뜻밖의 말을 하더래.
"이상한 건 전혀 없었어요. 그냥 평소처럼, 집에서 매일 컴퓨터 게임만 했어요."
-이중구 아내
이중구가, 한 온라인 게임을 매일 했다는 거야. 그럼 아까 그 지인의 인적사항, 그 명의를 이용해서 게임에 접속할 수도 있단 얘기야. 형사들은 곧바로 그 게임 회사에 협조 요청을 했어. 이중구가 해당 인적사항으로 게임에 접속하면, 곧바로 위치를 확인해 검거하기로 한 거지. 발로 뛰는 수사에 이어, 사이버 수사까지 펼친 거야.
그동안 양승진 형사는 이중구의 아내를 설득했어. 며칠에 걸쳐 아내를 설득한 끝에, 아내가 이렇게 말했어.
"저희 남편... 서울로 갔을 수도 있어요. 아마 천호동 아니면 청량리 쪽으로 갔을 거예요. 어릴 때 그쪽에 있는 중국집에서 배달을 했다고 그랬거든요."
-이중구 아내
과연 아내의 말이 맞았을까? 형사들은 곧장 서울로 올라가서 청량리와 천호동 일대를 샅샅이 뒤졌어. 어느새 이중구가 도주한 지 9일이 지났어. 그때, 게임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 이중구의 지인 명의로 개설된 아이디가 게임에 접속했다는 연락이야. 접속한 IP 위치를 추적했더니, 천호동이었어. 천호동의 한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거야. 마침 천호동을 수색하던 형사들이 곧바로 그 PC방으로 달려갔어. 예상 도착 시간은 2분 뒤. 이번엔 기필코 잡아야 해.
PC방에 들어가자 저 멀리, 게임을 하고 있는 이중구가 보여. 형사들과 눈이 마주친 이중구. 그는 순순히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어. 형사들을 본 순간 깨달았던 거야. 이 게임을 이제 끝내야 한다는 걸. 그렇게, 이중구 손에 수갑이 채워졌어.
▲ 범인의 실체
약 8년 간, 형사들을 비웃듯 도망다닌 발바리, 연쇄 성폭행범 이중구가 드디어 검거됐어. 형사들에게 이끌려 경찰서로 온 이중구는 조사를 받았어.
"DNA가 확보된 오래된 사건부터 조사를 시작했는데, 그걸 다 기억을 해요. 그 집이 어디고 집이 무슨 색깔 대문이고 집을 어떻게 해서 들어갔고 당시 피해자가 어떻게 하고 있었고. 처음 시인할 때는 좀 장난기 같은 피해 진술을 했어요. 성폭행을 할 때 (피해자들에게) '자기야, 여보야, 좋아?' 그런 말을 하도록 시키면서 했다는 것을,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처음에는 조사에 응했어요."
-양승진, 당시 대전동부경찰서 형사
그리고, 이중구가 검거됐을 땐 무직이라 했잖아. 근데 아까 청주 형사들이, 직업을 택시기사로 추정했잖아? 이중구, 과거에 대전에서 10년 간 택시기사를 했었대. 대전 곳곳에서 오랫동안 범행할 수 있었던 이유, 대전 지리에 빠삭했던 거야.
이중구의 진술에 의하면 첫 범행은, 그가 택시 기사를 하고 있을 1997년이었어. 택시에 술에 취한 여성 승객을 태웠는데, 그때 시비가 붙었다는 거야. 화가 난 이중구는, 그 여성에게 복수하기로 마음 먹었대. 택시에서 내린 여성의 집을 확인한 뒤, 며칠 뒤 그 집을 찾아갔어. 그때 옷을 벗고 있는 여성을 보고, 충동적으로 성폭행했다고 주장했어. 이게 바로 연쇄 성폭행의 시작이었단 거야.
충동적으로 성폭행을 시작했다던 그는, 누구보다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범행을 이어갔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악의 성범죄자 이중구.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검거된 그날, 경찰서에 몰래 숨어있던 유효상 기자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들을 수 있었어.
"실제 왜소해요. 그렇게 큰 사람은 아니에요. 체격이 보통 키보다도 좀 작다고 나는 생각을 해요. 몸도 그냥 운동한 사람처럼 날렵해 보였어요. 가장 중요한 거는 평범한 가장이라는데 씁쓸했습니다. 아이들이 있고 그런 가장이 어떻게 저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왜 저랬을까?"
-유효상 기자
이중구는 20대 딸과 아들까지 있는, 평범한 가장이었다는 거야. 뉴스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웃들도 전부 믿지 못했대. 평소 특별할 것 없는, 너무 조용한 이웃이었단 거야.
"전혀 몰랐다니까요. 뉴스를 보고 사람들이 기절했잖아요, 놀라서. 우리 애도 무서워서 나가지를 못했다니까."
"이 근처에 사니까 얼굴만 알죠.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녀서. 모자 벗은 모습은 한 번도 못 봤어요. 이 근처에서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없어요."
-인근 주민
들어보니 오랫동안 택시 회사를 다니면서, 동료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대.
"나는 그래도 걔네(발바리) 집 가서 커피라도 얻어 먹어보고, 마누라하고 얘기라도 해 봤지만. 그런 사적인 농담은 못 했어요. 술도 안 먹지, 담배도 안 피우지. 그러니까 사생활 드러나는 게 없어요. 그러니까 아는 사람이 없어요 거의. 우리 (교대)짝꿍 할 때도 여자 얘기 한 번 안 했어요. 형님, 형님 하면서 얘기해도. 나는 상상도 못 했어요. 걔가 그런 짓 하고 다니는 줄은."
-택시회사 동료
그런데 딱 하나, 알려진 게 있었어. 그의 취미. 뜻밖에도, 축구였어. 회사에서 늘 혼자 다니던 그가 10년 가까이 조기축구를 꾸준히 나갔대. 그런데, 그를 오랫동안 봐온 회원들이 이중구를 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게 있었어.
"성격은 자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축구는 참 잘했어요. 그래서 말 그대로 발바리라고 했던 거 아닌가. 달리기를 참 잘해요. 같이 잘 어울리다가도 꼭 저녁 때 되면 노는 날인데도 자기 일하러 가야 된다고. 자기 어디 가야 한다고 그러면서 저녁에는 안 어울려요."
-조기축구 회원
축구를 마치고 저녁만 되면 꼭 어딜 가야 한다고 했단 거야. 축구를 한 뒤 밤새 피해자를 물색하고, 새벽이 되면 범행을 저질렀던 거야.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는 이유도, 설명이 되지?
8년 가까이 범행을 저지른 이중구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 항상 피해자 집에 있던 수건을 이용해 결박했잖아. 그 이유가 뭐였을까? 그때 형사들이, 대전 곳곳에서 불심검문을 했잖아. 혹시나 수상한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 의심을 받을까봐 범행 도구를 들고 다니지 않았던 거야. 피해자를 위협하던 칼도 들고 다니지 않았어. 집에 침입한 뒤, 피해자 집에 있던 칼을 범행 도구로 이용했던 거지. 또 피해자들에게 말했던 '상희'라는 인물은, 이중구가 만든 가상의 인물이었어. 게다가 대전 지리를 잘 알면서도, 대전역 가는 길을 물었던 거지. 전부 수사에 혼선을 주려 했던 거야. 아주 철두철미하게 계획했던 범죄였던 거지.
수사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더 큰 이유가 있었어. 이중구의 병무청 기록을 보니까, B형이 아니야. O형으로 돼 있더래. 병무청 기록이 잘못되어 있던 거야.
"처음에는 발바리가 B형이라는 자료가 있어서 병무청에서 용의자의 나이대에 있는 모든 B형의 남자들의 자료를 갖다가 대조 작업을 했었고요. 또 키가 작고 좀 의심이 되는 것은 일일이 확인도 했었거든요. 근데 나중에 검거하고 났을 때는 병무청 자료에는 O형으로 혈액형이 등재되는 걸 확인해가지고 허탈했습니다."
-양승진, 당시 대전동부경찰서 형사
그럼 이중구는 대체 어쩌다 이런 악랄한 연쇄 성폭행범이 된 걸까? 이중구의 정신 감정서에, 그 답이 나와 있어.
"매우 내성적인 성격의 피고인은 수줍음이 많고 소심하며 자신감이 매우 부족하고 타인의 사소한 비판이나 거절에도 극도로 민감하여 주변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고 느끼기 쉬운 등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뚜렷하고 피해의식이 많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분노감정이 상당기간 내재되었던 것으로 보이며…(중략)… 최초의 범행시 늘 위축되고 못났다고 생각되는 자신이 누군가를 제압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기도취적 보상감을 제공해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신감정 내용 中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상대방을 내가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그것이 바로 권력이거든요. 이중구는 그런 것을 도저히 평상시에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가 없는데, 범죄 현장에서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이 권력을 내가 휘두르는 데 따라서 피해자가 좌지우지되면서 움직이고 있는 그 상황을 굉장히 재미있어 하고 쾌감을 느끼면서 즐겼던 그런 어떤 심리상태가 된 게 아닌가. 그리고 그런 심리 상태에 중독이 되다 보니까, 그 강한 자극을 잊지 못하고 스스로의 어떤 의지나 노력으로 쉽게 그만두고 끊을 수 없는 그런 단계까지 간 게 아닌가."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
범죄중독. 범행하면서 느낀 권력감과 지배욕에 중독됐다는 거야. 그럼 동시에 여러 명을 상대로 범행한 것, 그리고 피해자의 친구까지 부르게 시켰던 건, 왜 그랬겠어? 여러 명의 피해자가 굴복하는 걸 보면서, 더 큰 권력감을 느꼈던 거지. 그러면서 피해자들에게 돈까지 갈취하고, 그걸 차곡차곡 모아놨어. 그 돈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마치 전리품처럼, 뿌듯해 했을 거야.
"내가 하려고 했던 범행을 나의 노력으로 완성을 했다 라는 것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전리품. 현금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예금 통장을 보고 자기 나름대로 어떤 만족감을 느꼈을 그 가능성도 있고요."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
▲ 법의 심판
잘못된 권력욕에 심취한 이중구는, 계속 범행을 하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피해자들이 신고조차 하지 못하도록 협박했어. 자신은 잡히지 않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에 사로잡힌 채, 피해자가 무려 100명이 넘어도 범죄를 멈추지 않았어.
이중구에게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는 무려 184명. 그 중 127명이 피해를 입은 77건의 사건에서는 그의 DNA 증거도 나왔어. 이중구는 본인의 DNA가 나온 사건의 혐의는 인정했어. 이제 DNA가 나오지 않은, 다른 범행들을 확인할 차례야. 형사들이 이중구에게 수사 자료를 내밀며 물었어.
"이중구 씨, 이 사건도 당신 수법이랑 똑같은데. 이거, 당신이 한 거 맞죠?"
그간 모든 걸 시인하던 이중구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닫아버린 거야. 증거가 없으니, 자백을 안 하면 범행을 입증할 수 없단 걸 알았던 거지. 형사들이 매달리며 추궁했지만, 이중구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리고 몇 달 뒤, 이중구의 공판이 시작됐어. 이중구, 법정에서 태도가 어땠을 것 같아?
"지난 1월 검거된 희대의 연쇄성폭행범 이중구에 대한 재판이 지루한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기억나지 않는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 재판이 지연되기 일쑤다. 이 씨는 DNA가 일치한 범행에 대해서만 시인할 뿐 법정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당시 신문 보도 中
검찰도 어떻게든 나머지 범행을 입증하려 했지만, 끝까지 증거가 나오지 않은 사건에 대해선 입을 열지 않았어. 결국, DNA가 없는 사건에 대한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어. 그럼 판결은 어떻게 났을까.
"피고인에 대한 형을 무기징역으로 정한다. 피고인은 7년 8개월 가량 동안 무려 70여 회에 걸쳐 대부분 치밀한 사전 준비 아래 100여명이 넘는 나약한 여성들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는데, 범행 횟수만 놓고 보더라도 전대미문의 수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범행의 죄질도 매우 불량하다. 재범의 위험성이 너무나 큰 피고인을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판결문 中
혐의가 인정된 사건들만 봐도, 전대미문 성범죄 사건이자, 역사상 최악의 성범죄라고, 법원에서도 판단한 거야. 잘못된 방식으로 왜곡된 권력욕을 즐겼던, 그 위험한 중독에 빠진 끝에 많은 피해자들의 영혼을 망가뜨린, 극악무도한 연쇄 성폭행범, 이중구. 그렇게 이중구는,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됐어.
원조 발바리, 이중구 사건이 막을 내린 뒤에도 이를 모방한 유사 발바리들이 등장했어.
근데 전부 시기가 언제야? 2010년대 초반까지 있었던 발바리, 최근엔 보기 힘들게 됐어. 발바리 사건 이후, 아주 많은 변화가 있었어. 우선 지금은 어딜 가나 CCTV가 있어. 블랙박스, 스마트폰 등 연쇄 성범죄를 저지를 수 없는 환경이 된 거지. 그리고 2010년, 정부는 범죄자에 대한 DNA법을 만들었어. 살인, 강도, 강간 등 재범 가능성이나 강력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범죄를 저지를 경우, 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데이터베이스화 하기로 한 거야. 그 결과, 2023년 기준 DNA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범죄자의 수는 32만 명이 넘어. 만일 강력범죄 전과자가 성폭행 범죄를 일으키면, 바로 DNA 대조가 가능하겠지.
그리고 2013년, 60년 만에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됐어.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거나 합의를 해도, 수사기관에서 자발적으로 수사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거야. 이런 변화로, 더는 연쇄 성범죄자들이 나오기 힘들게 된 거지.
그럼 이제 우리나라는 성범죄로부터 안전해졌을까? 발바리 같은 연쇄 성폭행은 줄었을지라도, 'N번방', '목사방' 같은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어. 그 피해자 수는 셀 수도 없어. 20년이나 흘렀지만, 피해자를 그저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만 바라본 점에는 차이가 없어.
단순히 법적 제도만 변할 게 아니라, 성범죄는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아주 중대하고 잔인한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성범죄는 계속 형태를 바꿔가며,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들어낼 거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