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칼럼]역사의 강물은 바다로 흐르게 돼 있다

9 hours ago 3

롤랑-간디-톨스토이가 남긴 ‘인간애’ 유산
이를 잇는 자본주의 경제로 세계 주도한 美
세계사 계속 이끌려면 공존 외면해선 안 돼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프랑스의 문학가 로맹 롤랑(1866∼1944)은 세계적인 작가이다. 러시아 대문호인 레프 톨스토이 전기를 썼으며 ‘장 크리스토프’ 등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유럽을 방문했을 때 롤랑과 만나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롤랑, 간디, 톨스토이를 합친 세 사람의 공통된 인간애 정신은 그 시대에 영향을 남겼다.

롤랑이 ‘장 크리스토프’ 작품을 위해 여러 해 동안 저술에 열중했을 때였다. 그의 친구는 ‘장 크리스토프’가 롤랑의 훌륭한 작품으로 완성되길 염원했다. 작품이 완성될 즈음, 롤랑을 찾아가 “작품에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롤랑은 “대단히 만족스럽고 아끼고 사랑하는 작품을 완성했다”면서 “이렇게 정성을 다한 작품을 누구에게 주겠는가. 원고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가 죽을 때 관에 넣어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답했다. 롤랑은 1915년 노벨 문학상 상금을 국제적십자사에 기증할 만큼 인간애를 염원한 휴머니스트였다.

만일 그의 농담처럼 원고를 그대로 갖고 죽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작가의 삶과 의미가 사라져 버렸을 거다. 프랑스와 인류는 박애정신으로 가득한 정신적 유산을 상실했을 것이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다. 경제적 가치, 권력과 정치 의욕, 지성인들의 명예욕도 마찬가지다. 소유의 대상으로서의 유산은 소유가 끝나면 존재가치도 사라진다. 서로 주고받는 데서 삶과 역사의 의미를 이어가는 것이 인생의 도리다. 그런 정신적 지도자가 톨스토이였다. 간디의 정신과도 맥이 이어진다.

롤랑, 간디, 톨스토이가 남겨준 정신과 생애는 그들의 정신적 유산을 통해 더 높은 삶의 가치로 남겨졌다. 학문과 예술의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애의 정신이다. 역사적 유구성과 인류 전체로서의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봉사다. 소유, 공존, 인간애로 이어지는 정신이다.

한 세기가 지났다. 지금은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과 공산국가 러시아를 거쳐 미국이 세계 역사를 주도하는 시대가 됐다. 지금까지 미국을 이끌어 온 정신은 기독교가 남겨준 휴머니즘과 자본주의 정신이다. 많은 경제학자는 미국의 자본주의가 퇴보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공산주의자들도 미국 자본주의가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미국 자본주의 경제는 지금까지 세계 경제를 이끌어 오고 있다. 그 경제 정책이 기독교 정신의 기반에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기독교회는 성쇠의 과정을 밟았으나 기독교적 휴머니즘은 현재에도 존속되고 있다. 전 세계가 휴머니즘 정신을 계승하는 경제는 희망적이라고 인정한다.

필자가 1962년 미 하버드대에 머물 때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학생들에게 남겨준 교훈을 지금도 기억한다. “지금 미국은 선조와 선배들의 경제적 혜택을 물려받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됐다. 그 혜택을 우리가 받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아메리카에는 희망이 없다. 그 경제적 부를 가난한 나라들을 위해 베풀 수 있을 때, 아메리카는 세계적 지도력을 갖추며 인류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교회는 유지되고 있지만, ‘공존을 위한 인간애’의 정신은 소외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세계 질서보다도 미국의 경제 권력을 앞세운다. 역사를 움직이는 세력은 미국이 경제적 부를 독점해 국제적 우위를 차지하면 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 세계보다는 미국, 문화와 정신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위력, 미 주도의 위상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인류 공존의 질서까지 주도하겠다는 공언마저 삼가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도 그 방법과 과정이 정도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빌 게이츠는 2000억 달러(약 275조 원)를 아프리카 보건의료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미국의 부보다는 인류를 위하는 기여가 미국의 의무임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트럼프의 주장과 훈계를 받고 “대통령님, 저는 당신께 드릴 비행기가 없습니다”라고 응수했다. 경제적 부가 인권보다 중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 정신들이 미국의 전통이었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준 미국의 정신과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6·25전쟁을 함께 치르면서 미국을 군사, 경제의 동맹국으로 받아들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적 번영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동맹의 가치는 세계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앞으로 세계 역사는 누가 이끌어 가는가. 인간애의 정신으로 세계 질서를 정착시키고 인류 전체의 희망을 되찾아주는 나라와 사회다. 인류의 역사는 영원한 정신적 가치를 증대시키는 국가와 사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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