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혁신의기술] 〈54〉한국 제조업, AI를 어떻게 내재화 할 것인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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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내세운 세계경제포럼(WEF)의 회장, 클라우스 슈밥이 강조한 말이다. 지난 두 편을 통해 우리는 한국 제조 현장에서 인공지능(AI)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와 그 벽을 이미 넘은 기업들의 공통 조건을 살펴봤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포스코의 60년 제철 경험도, 삼성전자의 모바일 AI 자산도 없는 중소 제조기업은 어디서부터, 무엇으로 시작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한국 제조업의 현장을 지키는 많은 이가 마음속으로 품었을 말이기도 하다. 직원 50명의 금속 가공 공장을 이끄는 사장이, 3개 라인짜리 플라스틱 성형 공장의 현장 관리자가 느꼈을 감정은 감동이 아니라 막막함이었을 수 있다. “결국 대기업이라 가능한 이야기 아닌가.”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인더스트리 4.0을 가장 먼저 추진한 독일의 제조 경쟁력은 대기업이 아니라 수천개의 전문 중소·중견 기업이 받쳐왔다. 가족이 대를 이어 한 분야에 수십 년 집중해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1~3위를 지켜온 강소기업들, 이른바 미텔슈탄트(Mittelstand)다. 독일 고용의 절반 이상을 이들이 책임져 왔다.

독일이 2011년 '인더스트리 4.0'을 처음 제창하며 중소기업에 가장 먼저 한 일은 AI 솔루션 보급이 아니었다. 중소기업이 AI를 직접 실험하고 배울 수 있는 혁신센터 20여개를 전국에 구축하는 것이었다. 개별 기업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그 기업이 속한 생태계의 설계 문제로 접근한 것이다.

물론 독일을 완벽한 모범 사례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방향만큼은 분명했다. '혼자 하지 말고, 생태계로 연결하라.'

한국의 중소 제조기업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길도 같은 방향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전사적 전환이 아닌 '가장 아픈 공정 하나'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불량률이 가장 높거나, 이유 없이 라인이 자주 멈추는 공정 하나를 먼저 고른다. AI를 들이기 전에, 이 공정이 왜 우리에게 가장 아픈지를 묻는 것이 내재화의 진짜 출발점이다.

둘째, AI보다 데이터를 먼저 모으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찍어둔 공정 사진도, 담당자가 엑셀에 기록한 불량 내역도 데이터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의 리소그래피 공정에 AI를 적용하기 전, 가장 먼저 센서 데이터를 쌓은 것처럼 데이터를 모으는 6개월이 AI 도입보다 앞서야 한다.

셋째, 혼자 하려 하지 않는다. 다행히 한국에도 두 갈래의 지원 채널이 있다. 정부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의 2026년 스마트 제조혁신 지원 사업을 통해 AI 공장 구축부터 전문인력 육성까지 폭넓게 지원한다. 대기업 쪽으로는 삼성전자가 2015년부터 진행해 온 스마트공장 지원사업이 있다. 이 사업을 통해 2023년까지 전국 중소기업 3000여곳이 스마트공장 구축 경험을 먼저 빌렸다. 생태계는 이미 작동하고 있다.

이 세 단계는 앞서 진단한 세 개의 벽, 인프라·데이터·인재 문제에 대한 중소기업 언어의 처방이다. 인프라가 없으면 한 공정부터 시작하면 되고, 데이터가 없으면 먼저 모으면 되며, 인재가 없으면 생태계에서 빌려오면 된다. 대기업이 가진 것의 10분의 1로 시작해도 된다. 한 공정에서 충분히 증명하고 나서 다음으로 나아가면 된다. 빠른 공장이 큰 공장을 앞설 수 있다. 오늘 시작하는 중소 제조기업이, 한참 뒤에 시작하는 대기업보다 먼저 답을 가질 수 있다.

결국 혁신의 기술은 규모의 기술이 아니다. 한 공장의 가장 아픈 공정에서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한 한 사람이, 그 작은 성공을 옆 공정으로, 옆 공장으로, 공급망 전체로 나누는 구조를 만드는 기술이다. 이미 우리는 벽 앞에 선 한국의 제조업을 보았고 그 벽을 넘은 기업들의 공통 전략도 확인했다. 이제 결론은 분명하다. 내재화의 시작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지금 가진 것으로, 오늘 시작하는 한 사람이다.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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