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국힘은 사죄부터 했어야 옳다. 김건희의 국정 개입, 당무 개입 사실이 파다한데도 윤석열의 격노가 무서워 V0(제로)를 견제 못한 국힘의 무능과 무책임이 결국 패가망신으로 돌아온 것부터 무릎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이다. 비판이 쏟아지자 김용태는 21일 “김건희의 과거 행위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헤아리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영부인 검증과 공적 책임 부여, 친인척 감시 감찰을 약속했지만 그 정도로는 턱도 없다. 핵심은 대통령 부인(길다. 줄여서 영부인으로 쓰겠다)의 국정 개입이기 때문이다.
● 국힘은 김건희 국정개입 사죄부터 했어야국힘이 민주당에 앞서 ‘대통령 배우자 국정 개입 금지’ 공약을 내놓는다면, 진정성을 믿어주겠다. 김문수의 부인 설난영은 20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육영수 여사를 닮고 싶다며 선을 넘지 않도록 제2부속실이 필요하다고 했다. 좋은 말이지만 역시 핵심은 아니다. 2021년 말 김건희도 허위 이력을 사과하며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지만 뻥이었다.
대통령 당선 전부터 이럴진대 김혜경이 영부인이 되면, 영부인실장은 대통령실장과 동급으로 격상될지 모를 일이다. 그럼 그 계급에, 그 월급 받고 조용히 있겠나. 무엇이든 일을 만들어 표나게 움직일 게 뻔하다. ‘영부인 국정 개입 금지’는 오히려 민주당에서 내놔야 할 공약이다. 더구나 김혜경은 과거 법카-관용차 사용(私用)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은 형편 아닌가.
그럼에도 김용태가 ‘여성·아동·노인·장애인 정책’ 배우자 토론을 제안하고 민주당 거부를 비판한 것은 너무 나갔다. 영부인이 되면 대놓고 저출산고령화 정책에 개입하라는 것과 다름없어서다. 무슨 여성가족부 장관 청문회를 하는 것도 아니고, 윤석열-김건희 정권의 문제가 뭔지 아직도 모르는 듯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핵심은 김건희의 국정농단이었다. 영부인은 괜히 ‘정책’을 논해서도, 끼어들어서도 안 된단 말이다.
● ‘김건희 방지’ 공약과 법률 시급하다
후보 배우자 검증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2022년 1월 김건희의 ‘7시간 녹취록’ 방송 여부가 논란일 때 법원은 “후보 배우자의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는 비판과 감시 대상”이라며 약간의 단서를 붙여 방송을 허가했다.‘제2의 김건희 방지’ 공약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급한 대로 당 차원에서 “영부인 국정개입 절대 없다”고 공약부터 내놓고, 집권하면 미국처럼 아니 개혁신당이 지난해 10대 정책으로 내놓은 것처럼 ‘대통령 배우자의 법적 지위 및 지원에 대한 법률’을 만들어 공직자에 준하는 책임과 의무, 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 미국도 ‘정치적 영부인’은 좋은 소리 못 들어
대통령제의 원조인 미국에선 대통령 배우자도 대통령직(presidency)의 일부로 인정한다. 1978년 제정된 미국 연방법(USC) 제3편 제105조는 “대통령의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는 데 대통령의 배우자가 대통령을 지원하는 경우 대통령에게 부여되는 지원 및 서비스가 배우자에게도 부여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공공연하게 국정까지 관여하는 건 아니다. 인도주의적 명분이 분명한 영부인 사업(pet project)을 주로 한다.
프랑스에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직후 미국처럼 배우자 지위와 예산을 법제화하려다 엄청난 비판에 접고 말았다. 선출되지 않은 자에게 공적 지위를 부여할 순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의 사생활에 너그러운 이 나라에서도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이 대통령 카드로 400유로를 썼다고,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를 접견했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그만큼 선진국은 공사구분에 엄격하다.
● ‘대통령 놀이’할 배우자는 나가라, 정치판으로
2017년 8월 발표된 프랑스 ‘투명성 헌장’엔 대통령 배우자의 공적 역할로 ▲정상회의 및 국제회의에서 대통령과 동행 ▲국민과의 소통 ▲ 엘리제궁 행사 감독 ▲자선행사와 사회·문화행사 참석 지원 등을 명시했다. 정치 관여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2명의 비서관을 둘 뿐 별도 예산도 책정되지 않는다. 대통령실 예산에 포함된 배우자 관련 지출은 감사원의 감독을 받도록 했다.
파면 당한 대통령 윤석열은 재임 시 용산 대통령실 2층과 5층에 집무실을 만들어놓고 김건희와 공동으로 쓰는가 하면, 대통령 보고서도 2부 씩 만들어 바치라 했다. 취임 전부터 김건희의 공천 개입과 ‘김건희 라인’ 인사에 꼼짝 못했을 뿐 아니라 작년 11월 마지막 기자회견에선 “대통령 부인의 조언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국어사전을 다시 써야 한다”는 황당궤변까지 남겼다. 김건희가 그렇게 대통령 노릇 하고 싶으면 “우리 남편 바보”에게 맡길 게 아니라 김건희 자신이 대선에 나왔어야 했다.
하긴 김건희 탓할 것도 없다. 미국의 G. D. 웨킨은 2000년 ‘퍼스트레이디의 역할 한계’ 논문에서 정치에 적극 개입하는 영부인을 ‘요부형’이라고 했다. 사랑에 겨워 요부의 국정농단을 조언으로 받아들였던 윤석열이 문제였던 거다.
● 공사 구분 못한 이재명 부부, 윤석열 전철 밟을라
이재명은 김혜경의 공무원 사적 부림과 법카 사용에 대해 “남편 업무 지원하는 잘 아는 비서에게 사적으로 음식물 심부름 시킨 게 죄라면 죄겠지만…”이라고 썼다. 올 초 이재명의 인생과 정치철학을 담아 낸 책 ‘결국 국민이 합니다’에서다. 웃긴다. ‘죄라면 죄’가 아니라 그게 바로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꾸는 업무상 배임죄다.
다수 국민은 더 억울하고 억장 무너진다. 권력자들이 그놈의 사랑에 눈멀어 사인의 국정농단도 당연하게 봐주는 바람에 정권이 무너지고, 나라가 흔들리는 판국이다. 선출되지도, 임명되지도 않은 대통령 배우자들의 국정 개입을 더는 용납 못한다. 국힘은 안 해도 좋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윤석열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김건희 방지’ 공약과 법률을 내놓아야 한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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