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윤 대통령의 승복은 국민에 대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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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그 말만으로도 尹, 국민 신임 배반했다
탄핵 각하되면 “조기 하야” 일정 밝히고
인용되면 “헌재 존중” 밝혀 마지막 예의를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10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2025.02.20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10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2025.02.20 사진공동취재단
토요일 오후 동네 미장원에 갔더니 손님이 없었다. 원장님은 “(탄핵) 데모 시작하고부터 이렇다”며 “한 달에 한 번 머리 자르던 사람도 요새는 두 달에 한 번 자르는 모양”이라고 했다. 동네 단골 전복죽집도 폐업을 고민 중이다. 요즘 손님 늘어난 곳은 신경정신과 의원뿐이라며 죽집 사장님과 나는 ‘국민 우울증’을 걱정했다.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을 발표하면 가슴에 쇠뭉치 얹은 듯한 우울증도 사라질까. 윤 대통령은 12·3 친위 쿠데타를 놓고 2월 4일 변론에서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했다. 대통령 말이 잔인하게 들린다는 건 국민으로서 비극이다.

비상계엄 당일 이진우 당시 수방사령관을 수행한 장교는 비화폰 통화 옆에서 윤 대통령의 지시(“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를 들었다고 동아일보가 2월 5일 검찰 수사기록을 확인 보도했다. 헌재가 직권 채택한 유일한 증인인 수도방위사령부 조성현 1경비단장 역시 직속 상관 이진우의 지시(“내부로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를 수행했다고 2월 13일 정형식 헌법재판관의 질문에 똑똑히 답했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은 2월 말 최후진술에서 사실을 밝혀야 마땅했다. 그러나 국민 앞에 사과하기는커녕 ‘의원을 끌어내라고 했다’는 발언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호수 위에 비친 달빛을 건져내려는 것과 같은 허황된 것”이라고 수차 강조함으로써 대통령은 국민의 신임을 무참히 배반했다.

윤 대통령이 충암고 선배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비상입법기구) 메모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한 것 아니냐”고 묻고 “그렇다”는 답변을 받아낸 변론 과정도 국민 신임을 배반하다 못해 1970년대 TV 코미디 프로 구봉서-배삼룡의 ‘웃으면 복이 와요’를 연상케 했다.

1979년 12·12에서 1980년 5·17까지 가장 긴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은 그래도 ‘유능한 통치와 인기 없는 정권의 역설적 결합’이라는 평가를 받은 대통령이었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윌리엄 글라이스틴이 1987년 포린어페어스지에 쓴 ‘한국: 아시아의 역설’에서다. 당시 미국의 목표는 전두환 계엄이든, 또 다른 쿠데타든 군의 준동을 막아 평화적 정권 이양을 돕는 것이었다. 미국은 직간접으로 개입해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한미 외교에선 보수층을 안심시켰던 윤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가 아님에도 비상계엄을 때림으로써 한국의 민주시계를 50년 전으로 되돌렸다. 행정·사법기관이 아닌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을 투입한 것만으로도 탄핵은 인용돼야 한다고 나는 본다. 만에 하나, 탄핵 기각 또는 각하된대도 국민으로서 승복할 작정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내게 이전과 같은 대통령일 수 없다. 반대파를 상종 못 할 범법자로 모는 ‘검찰 통치’로도 모자라 계엄군을 동원해 감히 제 국민을 적군처럼 처단하려 해서만이 아니다. 윤 대통령의 무(無)도덕 때문이다.

부(不)도덕이 도리나 규범에 어긋나는 것이고 비(非)도덕이 기존 도덕과 대립되는 것을 뜻한다면, 무도덕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나 규범 자체가 없는 것을 말한다. 부인에 대한 사랑만 타의 추종을 불허할 뿐, 부하를 사지(死地)로 몰아넣고도 혼자 살겠다며 험한 꼴 다 보이고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겠다고 결심했다”는 군통수권자를 ‘우리 대통령’으로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윤 대통령이 최후진술에서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잔여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하겠다고 밝힌 것도 국민의 신임을 잃은 걸 알기 때문일 터다. 그는 서울구치소 수감 때 “대통령은 국민의 자존심”이라며 “당당한 자세를 견지하려 한다”고 말했다고 윤상현 의원이 전한 적 있다. 더는 당당하지 마시라. 대통령 부인이라는 사인(私人)에게 국정농단을 허용한 것만으로도 국민 자존심은 무너진 지 오래다.

헌재가 탄핵을 기각 또는 각하한다면 윤 대통령은 “6개월 안에 자진 하야하겠다”고 일정부터 밝히기 바란다. 개헌과 정치개혁 하다가 임기 다 채울 공산이 크다. 그래야 괜한 갈등을 키우지 않고 ‘윤 없는 새 대한민국’으로 갈 수 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결정이 나오면 윤 전 대통령은 깨끗이 승복 선언을 해주기 바란다.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끝내 승복 안 해 ‘탄핵의 강’보다 깊은 내전에 빠질까 두렵다. 헌재 결정을 존중하며 대통령도 법 앞에 예외일 수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으면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다. 당신과 계엄을 지지해 준 보수에 대한 마지막 예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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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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