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원장.텅 빈 공장, 녹슬어 가는 기계, 그리고 하나둘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 이 장면은 미국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상징이자, '자동차 왕국'에서 '유령 도시'로 추락한 디트로이트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한때 디트로이트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이었다. 포드와 GM, 크라이슬러가 불을 밝히던 공장은 도시의 자존심이자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세계화의 물결은 냉혹했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옮겨간 공장들, 일본과 독일 자동차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은 디트로이트의 산업 기반을 점차 무너뜨렸다.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함께 불 꺼진 공장, 텅 빈 도시의 거리에는 황폐화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러나 오늘날의 디트로이트는 새로운 희망의 불을 밝히고 있다. 전기차, 인공지능(AI), 자율주행으로 대표되는 첨단 모빌리티 산업이 그 불씨다. 버려진 공장에는 AI 스타트업이 하나둘 들어서고, 멈춰버린 생산라인은 이제 전기차의 심장을 찍어내며 도시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 사례는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지역 경제가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익산 명동이라고 불리던 중앙동 거리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던 전성기를 뒤로한 채,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거리로 전락했다. 군산 역시 조선소와 잇따른 GM 공장 폐쇄로 사람들이 떠나버린 도심 곳곳에 빈 상가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노래 가사 속 낭만의 상징인 여수 밤바다를 수놓는 산업 단지 불빛들은 여전히 반짝이지만, 위태로운 신호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기우일까?
지금 우리는 관세 정책 변화, 무역 마찰 등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경제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다. 지역 산업이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가격 절감을 넘어, 독보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 해법을 나는 '지역·산업 특화형 AI'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역 산업이 가진 고유한 강점 위에 AI를 접목할 때, 새로운 경쟁 우위를 마련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일례로, 울산은 한때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생산방식의 변화, 중국 등 후발주자의 추격으로 인해 울산의 주력산업은 위기를 맞았다. 오랫동안 숙련된 기능공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중후장대 산업의 도시였지만, HD현대가 AI 기반 조선소와 선박을 추진하면서 울산을 기술집약적 미래 기술 첨단 도시로 변모시키고 있다. 특히, HD현대는 아비커스라는 자회사를 통해 울산 지역 주력산업인 선박에 자율운항 특화형 AI를 개발해 AI 자율운항 시스템을 탑재했고 대형 선박으로는 세계 최초로 대양 횡단에 성공하는 등 글로벌 선박 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 우위를 차지하는 기반이 됐다. HD현대의 AI 관련 투자와 아비커스의 성공은 젊은 기술 인재들이 떠나던 울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과거 대한민국 경제의 엔진이자 쇠퇴한 공업 도시가 아닌, 미래 기술로 무장한 첨단 도시라는 강력한 상징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듯 지역 경제는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되새긴다고 되살아나지 않는다. 미국 디트로이트가 그러했고, 울산 HD현대가 그러했듯, 작은 불씨는 언제든 거대한 불꽃으로 번질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역마다 자신만의 특화된 AI 전략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역과 산업을 연결하는 AI 고속도로 위에 4극(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과 3특(제주·강원·전북 특별자치도)을 중심으로 AX 연구개발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 AI 기업들이 참여해 지역 특화 산업과 연계한 데이터 수집과 실증이 가능하도록 체계적인 정부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이처럼 지역마다 AI 혁신 물결을 일으킨다면, 지역의 잠재력과 AI의 무한한 가능성이 만나 모두가 잘사는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 텅 빈 거리에 다시 불빛이 켜지고, 침체한 산업이 미래 성장의 무대로 되살아나는 것, 그것이 바로 지역 경제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길이다.
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원장 yunkyu85@nip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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