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계 6위 국력의 이면, 글로벌 R&D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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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훈 포스텍(POSTECH) 교수박재훈 포스텍(POSTECH) 교수

최근 대한민국은 미국 시사주간지 'US 뉴스앤월드리포트'가 발표하고 포브스 인디아 등이 인용한 2025~2026 세계 강대국 순위에서 종합 6위라는 역대 최고 수준의 성적표를 받았다. 전 세계 공급망을 좌우하는 반도체·배터리, K방산의 저력이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평가한 우리의 '과학 인프라' 경쟁력이 세계 2위라는 사실이 이를 한 번 더 증명한다.

그러나 화려한 숫자 뒤에 가려진 현장의 경고등은 매섭다. 인공지능(AI), 양자,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가 될 핵심기술과 소프트웨어(SW) 경쟁력은 여전히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첨단기술 경쟁의 심화로 단일 국가의 역량만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연구가 증가함에 따라 기술 고립을 돌파하기 위해 '과학기술 국제협력'이라는 카드를 꺼내는 것이 새 흐름이 됐다. 하지만 연구 현장에서는 “돈은 늘었지만, 정작 해외 일류 석학들은 한국과의 협력을 기피한다”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연구는 이미 국경을 넘어섰지만, 우리의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틀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적 제약은 구조적이고 복합적이다. 첫째는 시간과 예산의 불일치 문제다. 국제 공동연구는 파트너 발굴과 공동 기획 등 사전 준비에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지만, 단년도 예산 구조 체계 하에서는 다음 해 사업 지속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워 안정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해외 기관이 먼저 협력을 제안하더라도 기회 자체를 포기하는 일마저 비일비재하다.

둘째는 글로벌 스탠더드로부터 괴리된 연구개발(R&D) 행정 및 관리 체계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에서는 하나의 전담기관이 모든 참여국의 접수와 평가, 사업관리를 총괄하며 창구를 일원화하는 '리드 에이전시(Lead Agency)' 방식을 보편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현행 법제 체계에는 이를 인정할 법적 근거가 없다. 기여도에 따른 지식재산권(IP)의 동등한 배분은 법적으로 매우 까다롭고, 한국식 행정 시스템(IRIS)에 접속해 영수증을 증빙하는 것은 해외 연구자들에게는 낯선 방식이다. 또 연구자들은 어디까지가 합법적 협력이고 어디서부터가 기술 유출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아 국제협력 시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국제협력은 단기간에 극적인 성과를 내는 활동이 아니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는 연구 과정이다. 이제는 이러한 본질을 제도에 담아내야 한다.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 국제협력의 영토를 넓혀줄 새로운 법체계가 필요하다.

새로운 법체계에는 반드시 세 가지 핵심 혁신이 명시돼야 한다. 첫째, 국제 공동연구에 한해 기존 혁신법의 규정을 면제·간소화하고, 글로벌 계약(Consortium Agreement)을 최우선으로 인정하며 공모 외 지정 및 리드에이전시 제도를 도입하는 '법적 유연성'을 보장해야 한다. 둘째, 국제 공동연구 시 계속비, 이월 등 다년도 예산 체계를 도입해 양질의 연구 기획이 가능하도록 충분한 사전 준비 기간을 부여하고, 협력 파트너와의 안정적, 장기적 협업 환경이 조성되도록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 셋째, 해외 톱티어 인재 유치를 위해 경직된 국내 급여체계를 타파하고 파격적인 처우와 정주 여건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인사·출입국 특례'가 담겨야 한다.

과학기술 국제협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사활이 걸린 생존 전략이다. 세계 6위라는 국력의 정점에서 미래 기술 패권 경쟁의 승자로 살아남기 위해 제도적 빗장을 과감히 푸는 새로운 법률 제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 법 제도가 과학의 날개를 꺾어서는 안 된다.

박재훈 포스텍(POSTECH) 교수 jhp@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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