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이 바이오를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한 지 20년이 지났다. 삼성, SK, LG 등 주요 대기업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으며, 셀트리온 같은 새로운 대형 기업도 등장했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은 JP모간 헬스케어콘퍼런스(JPM)와 같은 세계 무대에서도 주요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요 산업은 모두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대표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현대자동차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국내 바이오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삼성전자급’ 기업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바이오산업은 자본과 기술, 상업적 경험이 융합된 ‘종합 예술’의 특성을 지녔다. 화이자, 로슈 등 미국과 유럽의 주요 빅파마(대형 제약사)는 연구개발(R&D)뿐만 아니라 인수합병(M&A)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동력을 확보 중이다. 또 수많은 바이오 스타트업이 미국 나스닥시장에 신규 상장해 혁신적인 파이프라인을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기술특례상장제도가 바이오산업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지만 성장의 다른 한 축인 M&A는 비교적 활성화되지 못했다.
오리온의 리가켐 인수 사례처럼 이종산업 대기업이 바이오 업종에 관심을 두고 인수 대상을 물색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바이오산업에 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단기간에 매출과 이익을 높이는 전략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수익성을 확보한 바이오 기업에 관심이 높고, R&D 단계에 머무는 대부분의 바이오텍은 M&A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현실이다.
바이오 기업 생태계가 건강하게 순환하려면 바이오텍의 창업과 성장뿐만 아니라 ‘국가 대표 빅파마’의 육성도 필요하다. 단순히 R&D에 몰두하는 것을 넘어 대형 바이오 기업이 적극적으로 M&A와 오픈 이노베이션을 주도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인수한 것처럼 바이오산업에서도 삼성전자에 해당하는 ‘국가대표 빅파마’가 필요하다. 이런 기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국내 바이오텍은 해외 빅파마와의 라이선스아웃(LO)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개별 기업로서는 합리적인 전략이지만 국가 차원의 바이오산업 육성 전략을 고려할 때 국내에도 글로벌 빅파마에 버금가는 기업이 육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자체적인 혁신 노력뿐만 아니라 M&A 활성화, 장기적 투자 환경 조성, 정부의 정책적 지원 등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자체 R&D 투자와 더불어 외부에서 신약 후보물질과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M&A 조세 지원 등의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R&D 중심의 바이오텍을 넘어 글로벌 빅파마와 당당히 경쟁할 국가대표 바이오 기업이 탄생할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