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 추모식 때 펼쳐진 ‘사막 오픈런’
“순교자” “USA” 구호 이어져… 커크 생전 발언 논란엔 “그건 음해”
9만 명 운집… 수천 명, 밤새 기다려… 사실상 ‘마가’, ‘트럼프 지지’ 집회
진보 진영 대상 증오 표현 난무… 反트럼프 팻말 든 사람에 욕설도
밀러 씨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엔 넉넉한 웃음을 짓는 커크의 얼굴 사진이 들어서 있었다. 그는 커크를 ‘순교자’, ‘진정한 미국인’, ‘젊은 영웅’ 등 갖가지 수식어를 갖다 붙이며 예찬했다. 커크가 살해된 순간을 언급할 땐 “미국의 번영을 증오하는 세력이 그를 죽인 것”이라며 욕설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에게 “혹시 커크가 유색인종 등에 대해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한 건 아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그건 악마들이 만들어낸 음해(smear)다.”
● 뜨거운 태양 아래, 밥 굶어 가며 모인 이들이날 추모식은 오전 11시에 시작됐지만, 사람들은 전날 밤부터 모이기 시작했다. 행사 당일 오전 6시경부터 수만 명이 운집해 긴 줄을 만들었고, 그 2시간 뒤쯤엔 7만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테이트팜 스타디움 4층 객석까지 사람들로 가득 찼다. 행사장이 만석이 되자 주최 측은 인근에 있는, 최대 수용 인원 1만9000여 명인 ‘데저트 다이아몬드 아레나’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그렇게 옮겨간 이들은 대형 전광판을 통해 추모식을 함께했다.
이날 오전 피닉스 인근 글렌데일의 기온은 38도에 육박했다. 스타디움은 사막 위에 지어진 탓에 열기는 더 뜨거웠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잠시 쳐다볼 때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실제 이날 줄을 선 지지자 중 더위에 지치거나 탈진해 쓰러진 사람들도 여럿 목격됐다. 화장실도 턱없이 부족했고, 화장실에 가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물도 마시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이날 최고 등급의 보안이 적용된 탓에 차량 진입은 인근 수백 m 밖에서 막혔다. 스타디움 인근에서 줄 설 자격이라도 얻으려면 일단 차를 세우고 수십 분을 걸어 들어와야만 했다.
그런데도 무려 9만 명이 넘는 지지자가 추모식을 보기 위해 운집했다. 지지자 수천 명은 앞줄을 차지하기 위해 아예 밤을 새워 가며 현장을 지켰다. 주로 한정판 상품이나 인기 제품을 사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몰리는 소비 행태를 지칭하는 ‘오픈런’ 풍경이 미국 사막 한복판에서 엄청난 규모로 펼쳐진 것이다.● “우린 모두 커크 부활 믿어” 이날 기자가 만난 지지자 중 상당수는 커크를 단순한 정치인이나 활동가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커크를 순교자로 떠받들었다.
미첼 씨는 커크가 살해당하고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고 했다. 그는 “오늘은 추모식이 아닌 ‘약속의 자리’”라며 “커크의 죽음은 너무 안타깝지만, 그의 순교를 계기로 미국은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커크의 죽음이 마치 기독교의 예수처럼 미국인들의 죄를 씻어줬으니, 미국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됐단 얘기다.
상징적인 의미지만 아예 그의 부활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퇴역 군인 맥다월 씨는 “난 오늘 그를 추모하기 위해 온 게 아니라 사람들과 그의 부활을 외치기 위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기 온 미국인들 모두 이렇게 웃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이느냐”며 “모두 (커크의) 부활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추모식에 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도 이들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5시간 동안 이어진 추모식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으로 등장한 그는 커크를 ‘순교자’이자 ‘전도자’로 지칭했다. 지지자들을 향해 “위대한 전도자(커크)는 이제 불멸의 존재가 됐다”고 외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던 많은 이들은 예배 보듯 눈을 감으며 공감했고, 곳곳에선 ‘아멘’과 ‘할렐루야’ 소리 등이 터져 나왔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연대감을 확인하기 위해 이날 현장에 나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 ‘마가’의 일원인 이들은 뜻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체만으로 뿌듯하다고 했다.
트래비스 씨도 비슷했다. 그는 “사실 난 (커크가 죽기 전까진) 그의 영상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면서 “난 여기 모여 ‘USA’를 외치려고 3시간을 운전해 온 것”이라고 말했다. 더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법을 바꿔서라도 다음 대선에 출마시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현장은 파랑, 빨강, 흰색의 물결로 물들었다. 주최 측이 사전에 ‘드레스코드’로 성조기 색깔을 지정했기 때문. 이곳에 모인 이들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또 결집의 명분을 찾으려는 듯했다.
● “트럼프의 응원단” 냉소도
현장에 모인 이들은 “USA”를 외치고 화합을 말했지만, 이날 추모식에선 상대 진영 척결을 암시하는 증오와 보복의 표현도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부터 “싸우자(Fight)”고 외치며 지지자들을 자극했고, 강성 마가 성향인 밀러 부비서실장은 진보 진영을 사실상 ‘악’으로 규정하며 ‘좌파 척결’ 총공세를 예고했다.
이날 현장에 유색인종은 10%도 되지 않는 듯했다.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알리야 씨는 “저들이 미국의 목소리를 내는 것 같으냐”고 묻더니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더니 “저건 그냥 트럼프의 응원단일 뿐”이라며 냉소했다.
스타디움 인근에선 ‘노 킹스(No Kings·왕이 아니다)’ 같은 ‘반(反)트럼프 메시지’가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는 등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들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일부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은 그들을 향해 삿대질하고 욕을 퍼붓는 등 볼썽사나운 장면들을 만들기도 했다.
-글렌데일(애리조나)에서
신진우 워싱턴 특파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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