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카카오톡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친구(?)들의 사진이 뒤죽박죽 도배돼 있는 게 아닌가. 이름도 얼굴도 거의 잊은 사람들의 최근 사진이었다. 그들이 무사하게 살아 있음에 안심했지만, 굳이 안부를 알고 싶지는 않았다.
업데이트된 친구 탭 상단을 보고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친구 1081’ 1000명이 넘는 친구라니! 도대체 친구란 무엇인가. 카카오 사태 덕분에 인간관계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됐다. 현실의 나는 나이 들수록 공허하고 피곤한 인간관계를 줄이려 하는데, 1081명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된 드라마 <은중과 상연>은 파란만장하고 징글징글하게 애증 깊은 두 친구의 평생에 걸친 우정과 사랑, 상처와 용서, 삶과 죽음을 복합적으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런 친구 하나만 있어도 현실에서는 애초 손절할 테지만, 극적인 드라마에서는 가능한 우정일 것이다. 그래도 이런 관계가 인생에서 고통을 주지만 나를 성장하게 만든다는 교훈을 얻는다. 내 경우는 친밀한 친구라면 최대 10명, <은중과 상연>처럼 마지막으로 스위스행을 택한다면 최소 3명이 마지노선이다. 명리학에 일가견이 있는 지인은 친구가 되는 게 우연이 아니라고, 알고 보면 사주상 궁합이 맞기에 친구가 되는 거라고 했다. 인간이면 살기 위해 남녀 사이든 친구 사이든 성격이나 기질이 끌리고 맞는 사람을 찾게 돼 있다.
인간의 성격과 타고난 기질을 예전에는 혈액형으로 분류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16개 유형으로 나누는 MBTI가 유행했다. 나도 이 테스트를 한 뒤에는 이 분류가 상당히 타당하다고 믿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소개팅을 하면 “MBTI가 뭐예요?” 하고 묻는다. 같으면 동질성을 느끼고 다르면 유형 간 궁합을 따져본다.
요즘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연애 프로그램에서 또 다른 단어들이 들린다. 테토남, 테토녀, 에겐남, 에겐녀 등이다. ‘테토’는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에겐’은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의 줄임말에서 나온 인터넷 밈이다. 연애에서는 성호르몬 분포도가 더 도움이 되는 중요한 기준일 것이다. 이 4개의 유형 중 전통적으로 테토남과 에겐녀가 찰떡궁합이지만, 요즘 시대에는 상대적이지 않나. 연애 때는 N극과 S극처럼 서로 다른 점에 미친 듯이 끌려서 결혼했다가 ‘사람은 고쳐서 못 쓴다’는 말을 되씹으며 싸우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호르몬 변화로 테토남은 에겐남으로, 에겐녀는 테토녀로 바뀐다.
대학 시절 동아리 모임의 남녀 동기들이 몇 년 사이에 자주 모임을 한다. 걸핏하면 삐져서 며칠씩 말을 안 하는 남편, 드라마를 보다가 옆에서 갑자기 훌쩍거리는 늙은 남편이 꼴보기 싫다는 여자 동기들. 아내의 무서운 잔소리에 주눅이 들지만 한편 씩씩한 엄마처럼 든든하다는 남자 동기들. 에겐남과 테토녀도 잘 맞는 조합이라고 한다. 성격이 다르니 더 끌리고 서로 보완이 되니 그럴 수 있겠다.
그러나 모든 관계는 절대적이지 않다. 이들 중 A는 오랜 연애를 하다 부모가 궁합을 보라고 했을 때 끝내 보지 않고 결혼했다. 또 한 친구 B는 집안에서 궁합이 나쁘다고 반대해서 결혼을 포기했다. 현재 A는 싸우면서도 살고 있고, B는 결혼을 포기하고 인연이 없어서 독신으로 살고 있다. 누가 더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성공적인 인간관계란 무엇일까. 이 주제의 서적이나 자기계발서는 늘 넘쳐나지만 대체로 잘 팔린다. 하지만 인간관계에는 성공이 없다. 성장이 있을 뿐이다. 사무치게 외롭거나 혹은 죽을 때까지 지지고 볶으면서도 조금이라도 인생을 알고 성장하면 그게 성공이다.

1 month ago
12
![[부음] 유규상(서울신문 기자)씨 외조모상](https://img.etnews.com/2017/img/facebookblank.png)
![[5분 칼럼] ‘진보 정권의 아이러니’ 재현하지 않으려면](https://www.chosun.com/resizer/v2/XUGS65ZOHFNDDMXKOIH53KEDRI.jpg?auth=f32d2a1822d3b28e1dddabd9e76c224cdbcdc53afec9370a7cf3d9eed0beb417&smart=true&width=1755&height=2426)
![[新 광수생각]진짜 불로소득을 묻다](https://www.edaily.co.kr/profile_edaily_512.pn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