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체계의 복잡성 증대, 병력 감소, 방산 수출 확대 등 급변하는 방산 환경 속에서 군수(軍需) 분야의 인공지능전환(AX)이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 디지털화(DX)를 넘어, 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반의 예측·분석 체계로 무기체계와 물류의 신속성·정확성·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10일 서울 강남 모두의연구소에서 열린 ‘25-8차 국방 인공지능 혁신 네트워크’ 행사에서는 손대권 육군 군수사령관 등 민관군 관계자들이 전략과 경험을 공유하며 군수 AX를 위한 구체적 방향을 논의했다.
민간 물류 데이터, 군수로 확장
배성훈 윌로그 대표는 이날 “데이터가 없으면 군수 AX는 불가능하다”며 물류 현장의 ‘가시성’ 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윌로그는 사물인터넷(IoT) 센서와 클라우드에 기반해 물류 전반을 실시간 분석하고 리스크를 예측하는 솔루션을 개발해온 스타트업이다. 배 대표는 “과거에는 경험이나 감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민간 물류에서 축적한 경험은 군수 AX에도 확장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물류 관계자 24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도 소개했다. 응답자의 57.7%가 가시성 강화를 위한 기술을 이미 도입했고, 90.9%가 1~3년 내 관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44%는 실시간 데이터 분석 시스템에 관심을 보였다. 배 대표는 “민간의 다양한 데이터와 국방의 엄격한 요구 조건이 결합하면 시너지가 생긴다”며 “급식·의약품·탄약 같은 군수 자산 관리에도 데이터 기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윌로그는 실제 올 하반기 육군 군수사령부와 협력해 해외 파병부대 물자 상태 모니터링 사업을 시범 추진한다. 배 대표는 “위치 정보는 보안상 민감해 사용이 제한되지만 물자가 어떤 환경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시스템, 군수 AX 4대 요소 제시
박재훈 한화시스템 MRO사업단장은 무기체계 정비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군수 AX 전략을 발표했다. 그는 “무기체계는 신규 장비가 계속 추가돼 복잡성이 커지고 있지만 운용 인력과 정비 역량은 줄어드는 상황”이라며 “단순 고장 대응만으로는 군수 체계 가동률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MRO는 유지(Maintenance) 보수(Repair), 운영(Operation)의 영문 약자다.
박 단장은 군수 AX의 핵심 요소로 데이터, 초연결, 고장·잔여수명 예측(CBM+), 수요예측을 꼽았다. 그는 “민간은 외주·순환 정비 과정에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군은 운용·환경·보급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양쪽이 연결돼야 한다”며 “청해부대 같은 원거리 부대에서 문제가 생기면 저궤도 위성(LEO)으로 데이터를 전송하고, 단일 MRO 데이터 센터에서 통합 관리해 원격 기술 지원까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박 단장은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MRO 플랫폼 TOMMS를 예시로 들었다. TOMMS는 운용·고장·환경 데이터를 통합 관리해 고장 징후를 조기 탐지하고 필요한 부품을 미리 확보할 수 있게 한다. 그는 “2022년 국방 시범사업으로 기술을 확보했고, 2023년에는 AI 기반 수요예측 시스템을 완성했다”며 “30여 개 AI·빅데이터 모델 중 10개 알고리즘을 자동 선택해 최적의 결과를 내는 방식으로 고도화했다”고 소개했다.
민군 협력 통한 군수 AX 가속화
이어진 패널토의에서는 군수 AX를 위해서는 기술 뿐 아니라 거버넌스와 표준화 또한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엄용진 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전 육군 군수사령관)은 “육군 군수사만 해도 4~50만 개 품목을 다룬다"며 "일부는 민간 아웃소싱이 불가피한데 국제 표준 규격에 맞는 모듈화·표준화가 이뤄져야 운영과 유지보수 효율이 높아지고, 비즈니스 모델도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호상 인하대학교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는 데이터 활용의 방법론을 강조했다. 그는 “군수 AX 추진 과정에서 실제 보안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만 기업이 몰두하면 데이터가 없을 때 대비를 못하거나 품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합성데이터를 활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확도와 신뢰도를 높이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