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설경구가 또 한 번 변성현 감독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부터 '킹메이커'(2022),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2023)에 이어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로 네 번째 호흡을 맞췄다. 매 작품마다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온 설경구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이름조차 없는 인물 '아무개'를 연기하며, 존재의 불분명함과 구겨진 인간의 아이러니를 그린다.
'굿뉴스'는 1980년대 실화를 모티브로 한 블랙코미디 영화로, 평양으로 향하던 일본 여객기를 대한민국 땅에 착륙시키기 위해 벌어지는 비밀 작전을 그린다. 일본 적군파가 민항기 '요도호'를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을 시도한 요도호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설경구가 연기한 '아무개'는 이름도, 출신도, 직업도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정부의 그림자 속에서 나라의 대소사를 해결하는 비밀 해결사다. 그는 중앙정보부장 박상현(류승범)의 지시를 받고 수상한 작전을 기획한다. 아무개는 관객에게 말을 직접 걸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캐릭터.
'굿뉴스'는 블랙코미디를 표방하지만, 설경구는 "웃기려고 작정하고 만든 장면은 하나도 없었다"고 단언했다. "사는 게 블랙코미디 같아요. 작가의 상상력으로 쓰긴 했지만 대놓고 웃기려 하지 않고, 음악으로 템포와 리듬을 조절했죠. 서부극 신은 '더 가보자'라는 감독의 의도였고, 현실을 풍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손을 씻고 똥을 싸냐'는 대사도 있는데, 그게 모순을 보여주는 거예요."
설경구는 자신이 연기한 인물 '아무개'를 "투명인간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아무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투명인간 같아요. 어디에도 기대지 못하고,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아요. 결국 이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연극을 하는 인간이에요."
그는 이번 캐릭터가 "안 해봤던 역할인 건 확실하다"며 "소원 하나 받기 위해 달려온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을 증명할 '증' 하나 때문이에요. 어디에도 없던 존재지만, 그거 하나 받기 위해 달려왔다는 게 이 사람의 아이러니 같기도, 욕망 같기도 해요."
'굿뉴스' 속 설경구는 변 감독의 의도대로 완전히 '구겨진' 인물로 등장한다. "어떻게 하면 더 이상하게 만들까 고민했어요. 얼굴 점도 세 개였는데 너무 점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만 남겼죠."
이번 작품에서 설경구는 전례 없는 시도를 경험했다. 영화 속에서 그는 카메라 렌즈를 직접 바라보며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렌즈를 보고 연기하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예요. 너무 어색했죠. 변 감독은 '관객이 영화 속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려는 장치'라고 설명했어요. 관객에게 거리를 두게 만들고 싶었다고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불편했지만, 감독의 의도는 이해했습니다."
이 장치는 '아무개'의 존재의 의미다. "감독이 말한 대로, 아무개는 영화 속에서 현실과 관객의 경계를 허무는 인물이에요. 그 거리감이 오히려 캐릭터의 고립을 더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설경구는 이번이 변성현 감독과의 네 번째 정식 협업이다. '불한당' 이후 10년 가까이 함께해온 두 사람은 깊은 신뢰를 쌓았지만, 그는 "믿음만큼 의심도 한다"고 했다. "촬영 초반에는 항상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변 감독 머릿속에는 분명한 설계가 있어요. 나중에 보면 맞아떨어져요. 저는 제 생각보다 감독의 구상에 맞춰지려고 노력합니다."
'굿뉴스'는 두 사람 모두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이걸 어떻게 찍으려고 하지?' 싶었어요. 서부극 장면은 특히 '너무 간 거 아니냐' 싶었죠. 그런데 감독이 확신이 있었어요. 끝까지 밀어붙이더라고요. 결과적으로는 그의 판단이 옳았던 것 같아요."
설경구는 "변성현 감독은 나를 바꿔놓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불한당' 이후 농담으로 '내 영화 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있어요. 사실주의만 생각하던 제 사고를 깨준 사람이에요. 영화는 상상력으로도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줬죠."
그는 변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대해 "만화적 상상력과 현실감의 균형을 잘 잡는다"고 평가했다. "현장에서 감독, 촬영감독, 배우들이 모여 컷마다 논의해요. 정말 학구적이에요. 그런 과정이 힘들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영화를 만듭니다."
설경구는 자신을 향한 '변성현의 페르소나'라는 표현에 웃으며 손으로 엑스자를 그렸다. "이번이 네 번째지만, 이젠 결별이에요. '길복순' 끝나고 이제 그만 하자고 했는데, 소주 한잔하면서 준비한다던 작품이 이 영화더라고요. 그래도 결국 또 함께하게 됐죠. 마음에 쏙 들진 않았어요. (하하)"
그는 변 감독을 "장르적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원없이 하고 싶은 걸 다 한 것 같아요. 2016년에 '불한당' 찍고 벌써 10년이네요. 감독으로서 변성현을 믿어요. 어떻게 됐든 해낼거라는 믿음이죠. 변 감독은 술 먹는 거랑 영화 찍는 거에 진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에요. 다른 거는 모르는 사람이에요. 최선을 다해 먹고 찍는 사람이죠. (웃음)"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